"유럽 진출요? 기량 더 키워야죠."
지난 시즌 남자 프로배구의 왕자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OK저축은행이 차지했다. '절대강자' 삼성화재를 따돌리고 창단 2년 만에 처음으로 V리그 정상에 올랐다. 포스트시즌 5연승, 무결점 우승 신화를 썼다. OK는 플레이오프서 한국전력에 2연승을 거둔 뒤 챔피언결정전서 7연패 신화의 삼성화재를 만났다. 이변을 일으켰다. 무실 세트 2연승을 거두며 삼성화재를 벼랑 끝에 몰더니 3차전서 기어코 우승을 확정했다. OK는 내친김에 일본 V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인 JT 선더스를 제압하며 한-일 V리그 탑매치 우승컵도 품에 안았다. 꿈만 같던 최고의 한 시즌이었다.
OK의 승승장구 원동력엔 '스타 플레이어' 김세진(41) 감독의 지도력이 첫 손에 꼽힌다. '괴물' 시몬(28)의 영향력도 상상 이상이었다. '경기대 3인방' 이민규, 송희채(이상 23), 송명근(22)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이민규는 코트의 사령관으로 동료의 입맞에 꼭 맞는 토스를 배달했다. 자신의 주방에서 요리를 하듯 익숙하게 훌륭한 상을 차렸다. OK 훈련장인 용인 대웅경영개발원에서 그를 만나 태극마크와 유럽 진출, 배구 선수로서의 최종적인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이민규는 "배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님이 롤모델이었다. 당시 감독님의 경기를 상기해보면 어려운 볼을 물 흐르듯 편하게 처리했다"며 "그런 감독님을 항상 마주칠 때마다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아 쑥스럽다. '열심히 해라'고 한 마디 해주시면 감격스러웠고, 지난 시즌 코트에 들어오면 '내가 전설과 한 코트에서 같이 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영광이었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우상을 동경하던 10살 꼬마는 최태웅 감독의 뒤를 이을 한국의 차세대 세터로 성장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은 아픔의 무대였다. 준결승서 일본에 분패해 동메달의 아쉬움을 삼켰다.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월드리그, AVC컵 세계선수권 등 바쁘게 움직여 형들 몸상태가 많이 안좋았다. 점프도 안되고 몸이 많이 무거웠다. 생각하면 아쉽다. 4강서 일본에 패해 한일 탑매치 때 더 이기고 싶었다"는 그는 "승리한 뒤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민규는 이제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리그(5~6월)와 아시아선수권(7~8월)을 조준하고 있다. 그는 "자신감보다는 배우는 입장이다. 시몬도 '많이 부딪혀 봐야 한다. 뭐가 두렵냐'라고 항상 얘기한다. 많이 부딪히고 많이 깨지면서 배우고 느껴야 한다"며 "(유)광우(삼성화재) 형과는 7살 차이다. 안정감이 뛰어나고, 수비도 나보다 훨씬 좋다. 당연히 배우는 게 많다. 나에겐 좋은 일"이라고 웃어 보였다.
이민규는 향후 유럽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직까지 유럽 진출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김세진 감독님과 그런 얘기를 가끔 하는데 소속팀과 계약 기간이 3년 남아 있어 아직은 갈 수 없다"는 그는 "감독님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도전해 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군문제가 해결이 돼야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직 부족하다. 기량을 더 키워야 한다. 우선 팀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배구 선수로서의 최종 목표와 청사진은 명확했다. "코트에서 함께 뛰는 선수들에게 인정 받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같이 뛰는 선수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들에게 인정 받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같은 팀이든 상대 팀이든 함께 뛰는 선수들에게 '잘한다' 인정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이민규는 "우리 팀 색깔처럼 기존의 틀을 깨고 싶다. 난 세터치고는 한국에서 신장이 큰 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될 역할을 더 빠르고 안정감 있게 다듬고, 힘도 많이 길러야 한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더 진화해야 한다"고 먼 미래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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