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클리어링 촉발자? 영상은 해커라고 말한다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5.05.28 06: 00

지난 27일 마산구장에서 있었던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는 쉽게 말리기 힘든 격렬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NC 선발 에릭 해커와 두산 타자 오재원의 다툼이 발단이 된 것이다.
문제가 됐던 7회초. 선두타자 오재원 타석 초구부터 영상을 천천히 보면 해커가 와인드업을 시작할 당시 타격을 준비하던 오재원의 방망이 끝부분은 홈플레이트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 방망이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리지 않았으니 타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인데, 해커는 이때 공을 던진 것이다. 첫 공은 오재원이 건드리지 않았고 그대로 존을 통과해 스트라이크 선언됐다.
오재원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지만 이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2구째는 볼. 3구째에 다시 스트라이크가 들어왔고 볼카운트는 1B-2S가 됐다. 이제 오재원은 스트라이크 하나면 아웃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4구째였는데, 이번에도 오재원이 방망이를 홈플레이트 밑으로 흔들며 미처 타격 자세를 취하기 전 단계일 때 해커는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이에 오재원은 타석에서 벗어나며 타임을 요청했다. 타격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투수가 계속해서 공을 던지며 불리한 볼카운트가 됐기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그래서 심판도 받아들였다. 그런데 해커는 백네트 쪽에 공을 던졌다. 자신이 준비되기 전에 투수가 와인드업을 했지만 어쨌든 와인드업 후 타임을 부르게 된 오재원은 마운드쪽으로 손바닥을 펴보이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시 4구째는 볼이 됐고, 5구째에 나온 오재원의 1루 땅볼 타구를 잡은 에릭 테임즈가 해커에게 토스해 아웃카운트가 만들어졌다. 이후 해커는 덕아웃으로 돌아가려던 오재원을 향해 소리쳤고, 오재원이 반응했다. 말다툼을 벌이던 두 선수가 모두 흥분하자 양 팀 벤치에서 선수들이 쏟아져나와 한동안 경기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당사자들만 알 일이지만, 양 팀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진다. 두산 관계자는 “오재원은 해커가 한 말을 확실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른 것을 알고 대응했다”고 밝혔다. NC 측에서는 “해커가 오재원에게 ‘타석으로 들어가라(Get in the box)’고 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직역하면 타석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지만, 의역하면 ‘타임 부르지 말고 빨리 쳐라’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였든 해커의 행동은 양 팀 선수들 사이 소동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더군다나 전날 13-2로 이긴 NC가 7회초 이 시점까지 7-1로 앞서고 있는 상황. 쓸데없이 상대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영상에서 봤을 때 오재원이 타석을 벗어난 것은 해커의 리듬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최소한의 타격 기회를 얻기 위해 불가피했던 행동에 가까웠다.
그러나 해커는 타자가 타격할 틈도 주지 않으려고 타자의 방망이가 땅바닥으로 처져 있을 때 공이 든 글러브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전날 선발 이재학과 비교하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재학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타자의 방망이가 어깨 위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이것이 정상적인 투수와 타자의 맞대결이다.
충분한 타격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잘못이었다면, 두 번째 잘못은 불필요한 언행으로 상대를 자극한 것이었다. 해커는 자신이 정상적인 타격을 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적반하장 격으로 1루에서 만난 오재원에게 왜 타임을 불렀느냐는 물음을 던진 것과 같다. 타임을 받아준 것은 심판인데, 넓게 보면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될 여지도 생겨 해커에게는 좋을 일이 없다. 그래서 본인도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 같다"고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두산도 큰 책임이 있다. 두산 벤치에서 누군가 해커를 향해 그라운드에 공을 던진 것이다. 매우 이례적인 일로 해외 언론에서도 두산 선수가 공을 던진 것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심판진은 장민석이 공을 던진 것으로 보고 퇴장을 명했지만, 영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믿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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