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프로야구 선수들은 경기 시작에 앞서 30분 이상 타격 훈련을 한다. 티배팅을 시작으로 배팅볼 투수들이 던져주는 공을 받아치며 타격감을 조절한다. 이 타격 훈련의 성과에 따라 경기에서의 결과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많다. 배팅볼 투수들도 타자들의 감을 살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최근 넥센의 경기 전 풍경은 이와 거리가 있었다. 넥센은 29일 인천 SK전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경기장에 늦게 도착했다. 보통 원정팀은 오후 6시 30분 경기를 기준으로 3시 30분 정도에 도착해 몸을 푸는 데 넥센 선수들은 이날 5시가 넘어 경기장에 들어왔다. 스트레칭 등으로 가볍게 몸만 풀고 경기에 임했다. 넥센 관계자는 “전날 대구 원정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오니 새벽 3시였다. 체력 관리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넥센의 이런 행보는 이틀 연속 이어졌다. 넥센은 30일에도 역시 뒤늦게 경기장에 들어왔다. 5시 경기였는데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스트레칭이 시작됐다. 타격 훈련을 위한 배팅 게이지는 만들어놨지만 이를 활용하는 선수들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의 주축 선수들은 가볍게 티배팅 정도로 몸을 푼 뒤 다시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타격 훈련은 말 그대로 자율이었다. 하고 싶은 선수는 하고, 그렇지 않은 선수는 하지 않아도 됐다. 체력 관리를 위해 하루 정도 훈련 시간을 조절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틀 연속 그러는 것은 사실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해 염경엽 감독은 30일 경기 전 “우리만의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넥센은 염경엽 감독이 부임한 뒤 이런 일정의 훈련을 간간히 섞었다. 여름철이나 선수단의 피로감이 쌓여 있을 때 이런 훈련으로 체력을 관리했다. 염 감독은 “사실 배팅볼을 치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해하는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2년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선수들이 이런 패턴에도 적응이 되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별타격훈련과 특별수비훈련의 광풍(?)이 불고 있는 이런 시대에 이런 훈련 일정은 낯설지도 모른다. 밖에서 보는 사람에 따라 “대충 한다”라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염 감독은 단호한 어조로 “절대 그렇지 않다.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염 감독은 “훈련이나 연습은 겨울에 하는 것이다. 시즌 때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잘 구분을 해야 한다. 타격 매커니즘이 흐트러져 있다면 평소보다 더 많은 공을 치며 보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체력 저하라면 타격 훈련이 오히려 체력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넥센 선수들은 2년간 이런 시스템을 겪으며 부진이 자신의 타격 매커니즘이 문제인지, 아니면 체력적인 부분의 문제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고 있다는 게 염 감독의 진단이다. 물론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코칭스태프들의 날카로운 시선도 이런 정확한 분류를 돕는다. 이제 박병호 이택근 유한준 등의 베테랑 선수들은 알아서 훈련량을 조절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마냥 쉬는 것은 아니다. 염 감독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훈련을 하는 편”이라고 선수들의 능력에 신뢰를 과시했다.
자칫 잘못하면 자율이라는 이름 속에서 선수들이 나태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넥센 선수단은 이를 허용하지 않으며 여전히 엄청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강정호의 MLB 진출, 그리고 서건창의 부상이라는 커다란 악재 속에서도 올 시즌 팀 타율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그들만이 가진 시스템과 팀 분위기가 이뤄내고 있는 성과다. 그리고 한 번 잘 정착된 시스템이나 분위기는 시간이 흘러도 흔들리지 않는다. 강호의 조건이며 넥센이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이 전체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5군급, 비주전 선수들은 또 많은 훈련을 하는 것이 넥센의 특징이다. 염 감독은 “그런 선수들의 경우는 경기에 나서는 시간이 적다. 체력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라면서 “그럴수록 많은 훈련을 하고 1군 선배들의 타격을 보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실제 올해 맹활약을 하고 있는 김하성도 지난해 그런 과정에서 성장했다. 넥센 타선의 미래가 밝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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