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위기에 순간에 가장 빛난 선수는 정우람(30, SK)이었다. 절대 위기를 막아낸 정우람의 완벽투가 SK에 마지막까지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 동료들에게는 주자 지우개, 상대에게는 잔루 제조기다.
정우람은 30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2-2로 맞선 9회 1사 1,2루에 마운드에 올라 1⅔이닝 동안 넥센 타선을 실점 없이 틀어막았다. 팀이 승리하지 못해 빛은 바랬지만 그래도 위기 순간을 넘기는 힘은 ‘역시 정우람’이라는 말을 절로 나오게 했다. 최근 누구나 겁을 낼 수밖에 없는 넥센 타선이었지만 정우람의 침착함과 정교한 컴퓨터 제구력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넥센 타선이 더 긴장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직전 등판이었던 지난 28일 인천 롯데전에서 정훈에게 홈런을 허용하며 고개를 숙였던 정우람이었다. 여기에 넥센은 올 시즌 정우람에게 첫 자책점을 안긴 팀이었다. 바로 4월 15일 인천 경기에서 박빙 상황을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으나 김민성에게 결승타를 허용했던 기억이다. 또한 이날 등판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2로 맞선 9회 1사 1,2루. 아웃카운트는 두 개가 남아 있었던 반면 안타 하나면 경기를 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우람은 미동도 없었다. 첫 타자 박동원 타석 때 넥센의 기습적인 이중도루 사인으로 주자 2,3루가 된 상황에서 박동원을 3구 삼진으로 처리하고 한숨을 돌렸다. 이택근을 고의사구로 걸러 만루가 된 상황에서도 스나이더와 공격적인 승부를 한 끝에 5구째 변화구로 루킹 삼진을 잡아내고 실점 없이 이닝을 막았다. 1루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연장으로 돌입한 10회에서도 중심타선을 잘 상대했다. 박헌도를 2루수 땅볼로 잡은 것에 이어 가장 까다로운 타자인 박병호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고 위기를 넘겼다. 유한준에게 중전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이어진 2루 도루 시도 때 포수 정상호가 정확한 송구로 잡아내며 팀의 역전 발판을 만들었다.
이날까지 정우람은 총 24명의 기출루자가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다. 30일까지 20명 이상의 기출루자 상황을 맞이한 선수는 리그에서 12명이다. 그런데 정우람은 24명 중 딱 1명에게만 홈을 허용했다. 기출루자득점허용률은 단 4.2%에 불과하다. 단연 리그 선두다. 대개 20% 아래면 좋은 수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정우람의 이런 성적은 가히 특급이라고 할 만하다. 앞선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을 깎아 먹는 동시에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다.
이런 수치는 단순히 구위만 좋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위는 기본이고 풍부한 경험, 그리고 상대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배짱과 기운이 있어야 한다. 올 시즌 4승에 10홀드를 수확 중인 정우람이 앞뒤 불펜투수들의 부담을 해결해주는 한 SK 불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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