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호(33, SK)는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불운한 사나이다. 공이 자석처럼 정상호의 몸을 향하고 있어서다. 30일까지 10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해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투구뿐만이 아니다. 포수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얻어맞는 타구는 몸에 맞는 공보다 훨씬 더 많았다.
체격만 보면 어느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 선수지만 이렇게 시나브로 쌓이는 통증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팀 동료들, 구단 관계자들도 “온몸이 피멍 투성이”라고 안쓰러워 할 정도다. 정상호도 최근 계속해서 공에 맞고 있는 것에 대해 “1~2번이면 모르겠는데 일주일에 7번씩 맞고 그러니 힘들다. 이상하게 보호대가 없는 곳으로 타구가 향한다. 항상 그게 아이러니”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투구의 속도는 투수마다 다르다. 그래도 140㎞ 내외다. 하지만 타구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투구가 배트의 반발력을 등에 업고 더 빨라진다. 이를 곧바로 맞게 되는 포수는 쓰는 기자도, 직접 맞아 보지 않은 팬들도 그 고통을 모른다. 그저 “정말 아플 것 같다”라고 지레짐작하는 정도다. 이에 정상호는 “파울 타구의 고통은 포수들만 알 수밖에 없다. 상대팀 포수가 맞아도 아마 우리 팀 포수 모두가 걱정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냥 아파할 수는 없다. 포수는 경기를 이끌어가는 지휘자 중 하나다. 아픈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팀 사기에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상대에게도 약한 이미지를 보여주게 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곧 툭툭 털고 일어나는 이유다.
또 하나의 이유는 투수 보호다. 정상호는 “그런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수들의 어깨다. 포수가 아프다고 오랜 시간 누워있거나 치료를 받게 되면 투수의 어깨는 급속도로 식게 된다. 투구에 도움이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아픈 순간까지도 동료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포수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이를 담담하게 설명하는 정상호의 어투에는 어느새 프로 15년차의 관록이 느껴졌다.
그래서 농담 삼아 “(전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아이언맨 슈트가 필요할 것 같다”라고 웃는 정상호다. 하지만 마음은 농담처럼 편하지 않다. 무릎 관절에 타구를 맞는 부상을 당한 정상호는 29일과 30일 연속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아직까지는 뛸 상태가 아니라는 게 벤치의 판단이다. 실제 걷는 것조차 그렇게 편하지는 않는 상황이다. “그래도 (쉬다보니) 조금은 좋아지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정상호지만 이재원까지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포수 포지션이 비다 보니 부진한 팀 성적과 맞물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정상호는 30일 경기에서 대타로 경기에 나섰다. 몸 상태가 성치 않았지만 2-2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날 선발 포수인 허웅 타석에서 교체됐고 또 다른 포수인 이재원 또한 대타로 출장했다 교체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포수 마스크를 써야 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상황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12회 마지막까지 SK의 안방을 지켰다. 책임감이다. 포수 리드와 경기를 읽는 눈에서 한층 발전했다고 평가받는 정상호가 이제는 주전 포수의 막중한 책임감까지 어깨에 짊어진 채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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