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를 했었다면 좋았을텐데…".
시계를 되돌려 보자. 개인 통산 400홈런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승엽(삼성)은 지난달 31일 잠실 LG전서 9회 2사 2루서 마지막 타석에 등장했다.
이미 승부가 9-3으로 6점차를 리드한 삼성 쪽으로 기울어 있었지만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승엽의 400홈런이 혹시나 터질지 모르고, 승부를 떠나 대기록을 눈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LG 배터리는 이승엽과 승부를 하지 않았다. 포수 유강남은 홈프레이트 바깥쪽으로 거의 빠져 앉았고, 투수 신승현은 바깥쪽 공만 4개 연속으로 던졌다. 4개의 공 모두 직구. 승부를 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포수가 일어서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고의4구였다.
마지막 타석에서 스윙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이승엽은 담담하게 1루로 걸어 나갔지만 팬들은 아쉬움 섞인 시선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이승엽의 볼넷 직후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관중들도 보였다. 대기록을 기대했던 팬들의 맥을 빠지게 한 장면이었다.
2일 포항 롯데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류중일 삼성 감독은 "중계 화면을 보니 바깥쪽 승부를 유도한 것 같다"며 "상황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잘치든 못치든 승부를 했었다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400홈런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다. 야구하면서 100홈런을 달성하는 것도 힘든데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를 세웠다.
류중일 감독은 선수들이 홈런을 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면 가벼운 하이파이브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만큼은 뭔가 새로운 세리머니를 준비해야 하지 않냐'는 취재진의 제안에 류중일 감독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대기록을 앞두고 말하는 게 참 조심스럽다"며 "승엽이가 56호 홈런을 때렸을때 3루 코치였는데 3루를 돌면서 끌어 안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 메이저리그처럼 엉덩이를 부딪히면서 하이파이브를 해볼까 생각해봤는데 나 혼자 그러면 이상하게 보지 않겠냐"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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