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400홈런으로 한국야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더 추가한 이승엽(39, 삼성 라이온즈)에게는 잊지 못할 스승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KIA 타이거즈 타격코치로 있는 박흥식 코치 역시 그런 스승이다.
박 코치는 이승엽의 두 번째 시즌부터 깊은 인연을 맺었다. 모두가 이승엽의 400번째 홈런을 기다리던 지난 2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만난 박 코치는 “처음 만났을 때는 교타자였는데, 내가 1996년에 1군 타격코치로 부임해서 보니 그러기엔 아까운 선수였다. 그때도 호리호리했지만 유연성이 좋았다. 그래서 홈런을 칠 수 있다고 말해주며 변신을 시도했다. 워낙 성실해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1996년 타율은 3할3리로 높았지만 홈런이 9개밖에 되지 않았던 이승엽은 박 코치와의 만남 이후 1997년 32홈런으로 처음 홈런왕에 등극했고, 1999년에는 54홈런으로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의 벽을 돌파했다. 일본 진출 직전인 2003년에는 56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2013년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60홈런으로 다시 경신)을 작성하기도 했다.

아직 400호 홈런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지만 미리 축하를 해달라는 말에 박 코치는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삼성에서 8년을 함께하면서 힘들었던 일도 많았는데 잘 이겨내고 오늘날 모든 선수들에게 존경받는 선수로 성장해줘 고맙다. 한 팀에서 함께한 코치지만 오히려 내가 존경할 정도다”라며 진심을 전했다.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기대는 이미 넘었다. 한국야구를 대표할 선수가 될 잠재력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는 박 코치는 “할 수 있을 때까지 뛰어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승엽이 최대한 오래 선수생활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표현했다.
이승엽의 기량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 박 코치는 오히려 그의 인성을 방망이 솜씨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격을 갖춘 점을 더 높게 사고 싶다. 그래서 승엽이가 존경받는 것 아닌가. 잘 될 때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많이 해줬는데, 승엽이가 스스로 잘 지키고 남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 박 코치의 설명.

이승엽의 경상중-경북고 선배인 강동우 코치(두산 베어스)의 말도 일맥상통한다. 강 코치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주목받은 선수였음에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자기를 낮출 줄 안다. 내가 선배지만 보고 배울 점이 많은 후배다. 야구장에서 만나면 늘 ‘선배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다”고 덧붙였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홈런왕은 지금의 홈런왕을 키웠다. 박병호(넥센 히어로즈)도 이승엽의 영향을 받았다. 박 코치는 “넥센에 있을 때도 병호에게 승엽이 얘기를 많이 해줬다. 나보다 승엽이에게 묻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삼성과 경기가 있을 때 승엽이를 불러서 병호에게 한 마디 해주라는 말도 많이 했다. 그게 병호에게도 좋은 공부가 됐을 것이다”라며 흐뭇해했다. 이제는 박병호가 이승엽의 뒤를 따라가는 홈런왕으로까지 성장했다.
역사를 대표하는 두 명의 홈런왕을 빚어낸 장인인 박 코치는 이승엽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 코치는 “끝을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훌리오 프랑코도 50세 넘어서까지 선수생활을 하지 않았나. 열정만 있다면 보여줄 수 있다”고 이승엽을 격려했다. 이미 스스로 450홈런을 향해 뛰겠다고 한 만큼 이승엽의 커리어는 이제 막바지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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