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이라는 단어 그대로다. 정우람(30, SK)이 연일 팀의 위기 상황을 진화하며 상대 타선에 공포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지표가 정우람의 맹활약을 이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올 시즌 KBO 리그 최고의 불펜 치트키라고 할 만하다.
정우람은 5일과 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명불허전의 기량을 뽐냈다. 5일 경기에서는 1⅔이닝 동안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6일 경기에서도 1⅔이닝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상황이 박빙이었던 터라 정우람의 활약은 빛났다. 팽팽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실점 위기를 정리하며 LG 타선을 완벽 봉쇄했다. 기록 이상의 경기 내용이었다.
5일 경기에서는 2-2로 맞선 7회 마운드에 올랐다. 2-1로 앞서고 있던 SK는 7회 선발 윤희상이 유강남에게 적시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했다. 여전히 주자는 1루와 2루, 두 명이 남아있던 상황. 그러자 SK는 정우람을 올려 진화에 나섰고 정우람은 벤치의 믿음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정우람은 대타 나성용을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오지환 또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추가 실점을 막아냈다. 8회도 탈삼진 두 개를 앞세워 세 타자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6일 경기에서는 엄청난 배짱이 빛났다. 5-5로 맞선 8회였다. SK는 전날 30개 이상의 공을 던진 마무리 윤길현이 경기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여기에 문광은은 전날 투구 중 어깨에 가벼운 통증을 느껴 이날 경기에는 휴식을 취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정우람이 두 선수의 몫까지 다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우람은 공격적인 승부로 완벽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냈다.
5-5로 맞선 8회 1사 2루에서 서진용에 이어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정우람은 김용의를 유격수 방면 땅볼로 유도했다. 그러나 유격수 김성현의 송구 실책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한 채 주자만 불어났다. 다음 타석은 이날 좋은 감을 과시하고 있었던 박용택이었다. 하지만 정우람은 흔들리지 않았다. 몸쪽 낮은 코스로 초구를 던져 박용택을 2루수 방면 병살타로 유도했다. 점수를 주면 사실상 경기 흐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졌다. 정우람은 9회 나주환의 결승 3점포가 터지며 시즌 5번째 승리도 수확했다.
5일과 6일 경기는 정우람의 올 시즌 활약상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경기들이다. 정우람은 최근 넉넉하지 못한 팀 사정상 거의 대부분 박빙의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여기에 승계주자가 있는 상황이 절대적으로 많다. 제 아무리 경험이 많고 구위가 좋은 선수라고 하더라도 한 방이면 경기를 그르칠 수 있는 상황들이었다. 그럼에도 정우람은 두둑한 배짱과 절정에 이른 구위를 바탕으로 SK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있다.
세부 성적은 정우람의 환상적인 투구를 제대로 증명해낸다. 2.10의 평균자책점도 뛰어나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엄청난 기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우람은 올 시즌 1할2푼4리의 피안타율을 기록 중이다. 이는 1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1할8푼6리의 피장타율도 역시 1위다. 설사 맞더라도 큰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14.10개 이른다. 위기를 삼진으로 진화하는 능력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SK 불펜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을 낮추는 데도 일조 중이다. 정우람은 총 28명의 기출루자 중 딱 1명에게만 홈을 허용해 이 비율이 3.6%에 불과하다. 단연 리그 최고 기록이다. 여기에 연투시에도 1.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좌·우타자를 가리지 않는 특유의 활용성은 여전하다. SK가 정우람을 마무리로 돌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활용할 수 있게 대기시켜놓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위기 상황마다 SK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치트키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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