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구질이 좋은 것보다 빗맞더라도 안타가 좋아요”
이명기(28, SK)는 지난 5월 말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가 잘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타구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주위의 격려 직후였다. 이명기는 “그래도 안타가 좋다”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장비를 챙겼다. 이명기의 말에서는 답답함이 묻어 나왔다. 올 시즌 들어 좀처럼 자신의 타격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었다.
SK의 붙박이 리드오프로 낙점된 이명기는 올 시즌 타격 부침이 다소 심했던 편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제 타이밍에 공이 맞지 않아 고전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다. 꾸준히 멀티히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이명기는 만족할 수 없었다. 좌익선상을 빠져 나가는 2루타는 결과가 좋지만 내용적으로 타이밍이 늦어 만들어진 안타라는 설명이었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내야안타의 비중이 높기도 했다. 개막 한 달 후였던 4월 26일, 이명기의 타율은 2할6푼9리다.

반등은 있었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했다. 4월 28일 NC전부터 5월 2일 KIA전까지 4경기에서 세 번이나 3안타 경기를 했다. 이명기가 가장 좋아하는 좌·우중간 타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과 이상의 소득에 이명기도 “이제야 타격감이 조금 돌아오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타율은 3할3푼7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불의의 사고 때문이었다.
이명기는 5월 2일 광주 KIA전에서 심동섭의 투구를 머리에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고의도 아니었고 다행히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유증은 남았다. 한동안 어지러움과 매스꺼움을 호소했다. 경기 출장 명단에서 한동안 빠진 이유였다. 8일 인천 삼성전에서 복귀했지만 좋았던 타격감을 다 잃어버렸다. 이른바 ‘헤드샷’을 맞은 선수들이 대개 겪는 현상들이었다. 이명기도 다르지 않았다. 타율은 그렇게 2할7푼6리까지 미끄러졌다.
그러나 그 와중 속에서도 타구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은 코칭스태프의 기대감을 불러 모았다. 잘 맞은 타구가 잡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용희 SK 감독이 결과로 드러나는 타격 부진에도 불구하고 이명기에게 꾸준히 기회를 준 이유였다. 그리고 이명기는 반등에 성공했다. 5월 28일 인천 롯데전부터 6월 6일 잠실 LG전까지 9경기 연속 안타다. 9경기 중 4경기가 멀티히트였고 한동안 잘 나오지 않았던 2루타 이상의 장타가 4개나 나왔다.
5일과 6일 경기에서 3안타씩을 치며 타율을 바짝 끌어올린 이명기는 다시 3할 타율(.303)에 복귀했다. 규정타석을 소화한 SK 선수 중에서는 가장 타율이 높다. 이명기는 공을 잘 고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쳐서 나가는 선수다. 지난해 83경기에서 만든 3할6푼8리의 기록이 이를 대변한다. 몰아치는 능력이 있고 내야 땅볼도 안타로 둔갑시킬 수 있는 빠른 발이 있어 한동안 상승세를 기대할 만하다. 이명기의 잦은 출루는 분명 SK 타선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수비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5일 경기에서는 펜스 상단에 맞을 법한 양석환의 타구를 환상적인 점프 캐치로 잡아냈고 6일 경기에서도 양석환의 타구를 펜스 앞에서 잡아내는 등 안정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조원우 코치와 집중적으로 외야 수비 훈련을 한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3할 등정으로 재출발을 알린 이명기가 공·수·주 3박자를 갖춘 리드오프로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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