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에이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6.08 15: 01

불펜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펜포수도, 투수코치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보조요원조차 없었다. 그런데 적막함이 흐르는 불펜의 공기를 깬 선수가 있었다. 한 선수가 조용히 자세를 잡다 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불펜에서, 그는 연신 투구폼을 잡아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 또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렇게 한참 홀로 체조(?)와 고민을 거듭한 한 선수는 잠시 눈을 뗀 사이 클럽하우스로 사라졌다. 지난 6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우연히 보게 된 김광현(27, SK)의 모습이었다.
김광현은 현재 KBO 리그 최고 투수 중 하나, 어쩌면 최고 투수다. 150㎞를 넘는 빠른 공, 그리고 역대 최고급인 슬라이더를 앞세워 타자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다. 좋은 신체조건,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어깨는 분명 신이 내린 축복이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선수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가 KBO 리그의 그 어떤 선수보다 많은 훈련을 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임은 분명하다. 웬만한 다른 선수들은 쉬는 월요일에도 경기장에 나와 훈련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신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선천적인 재능, 그리고 후천적인 노력이 더해져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만큼 현재의 자리를 지키기가 어렵다. 기대치도 커진다. 김광현은 농담 삼아 “6이닝 3실점을 해도 잘 던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투정을 부린다. 남들 같았으면 “호투했다”라는 이야기가 쏟아질 법도 하지만, 김광현을 바라보는 팬들과 언론의 눈높이는 그것보다 훨씬 높다. 받아들이는 선수로서는 가혹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조금 부진하면 부메랑은 더 크게 돌아온다. 지난 2일 수원 kt전이 그랬다. 타선이 넉넉하게 득점지원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4⅓이닝 동안 9개의 안타를 맞으며 6실점으로 무너졌다. 승리투수까지 아웃카운트 2개를 남겨두고도 김용희 감독이 교체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용이 좋지 않았다. 그러자 비난이 쏟아졌다. “꾸준하지 못하다”, “예전만 못하다”, “들쭉날쭉하다”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사실 이런 반응은 김광현의 경력을 관통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화려하게 날아올랐던 김광현은 어깨 부상 여파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김광현다운’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다. 비난이 쏟아졌고, 조롱도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한 번 무너진 경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백지를 채워갈 때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광현은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섰다. 노력과 자존심이 그 가운데 있었다. 6일 잠실구장에서의 나홀로 새도우 피칭은 이 치열한 노력을 대변한다.
그런 패턴대로, 김광현은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3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기록하며 자신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렸다. 9회 1사까지 볼넷도 내주지 않아 무사사구 완봉승이 기대되기도 했다. 비록 그 기록은 날아갔으나 김광현으로서는 2010년 6월 20일 문학 KIA전 이후 1813일 만의 완봉승이었다. 완봉승도 완봉승이지만, 김광현의 건재를 과시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는 한 판이었다.
많은 이들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모습을 김광현의 전성기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흔히 부활이라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그렇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지 모른다. 김광현의 전성기가 그 때인지, 아니면 앞으로 더 화려한 시기가 찾아올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없어진 것이 다시 성하게 된다”라는 사전적 의미와도 완벽히 맞지는 않는다. 김광현은 “내가 어디 갔다 온 것도 아니고, 난 7년 동안 항상 여기에 있었다”라고 웃어넘긴다. 우리의 눈과는 달리 김광현의 말처럼 에이스는 남모를 노력과 함께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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