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조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코칭스태프, 혹은 프런트라고 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들이 조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매주 1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이야기를 OSEN이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우승하는 그 날까지 함께 잘 하고 싶어요”.
야구장 내에선 선수 소개와 크고 작은 이벤트를 진행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때로는 차분하게 이벤트를 진행하고, 팀이 승리했을 때는 우렁찬 목소리로 팬들의 흥을 돋운다. 바로 장내 아나운서가 맡아서 하는 임무다. 특히 올 시즌 처음 1군 무대를 밟은 kt 위즈의 홈구장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는 특별한 아나운서가 있다. 10개 구단 유일의 여성 장내 아나운서 박수미 씨(31)가 그 주인공이다.

박수미 아나운서가 스포츠 장내 아나운서로 일한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1학년 재학 시절 교수님의 권유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박 아나운서는 “농구, 핸드볼 장내 아나운서는 10년 넘게 하고 있지만 야구장은 처음이다”면서 “처음에는 교수님께서 목소리가 좋다고 이 일을 추천해주셨다. 아르바이트식으로 시작하게 됐고, 지금까지 일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 아나운서의 원래 꿈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항상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장래 희망란에 썼다. 지금은 아나운서지만 비슷한 특성을 지녔다. 똑같이 목소리를 쓰는 일이다. 또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좋아했는데, 성향 자체가 많이 비슷한 것 같다. 특히 연극반 시절 학교에 캠코더를 들고 가서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을 인터뷰하고 영상을 찍기도 했다. 결국 지금 하는 일이 어렸을 때 재미있고 좋아서 하던 일과 비슷하다”라고 설명했다.
'kt 위즈'라는 팀은 박 아나운서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를 처음 시작했고, kt 역시 창단 후 처음 팬들에게 인사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박 아나운서는 “사실 몇 해 전부터 다른 구단에서도 제의가 있었다. 하지만 야구는 워낙 인기가 많고 팀들의 문화나 색깔도 확실하다. 남자들만 하던 일에 여자가 가서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서 계속 거절했다. 그런데 마침 kt가 새롭기 시작하는 팀이고, 저도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나의 색깔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기회가 왔다”라고 전했다.
박 아나운서는 2002년부터 농구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스포츠 장내 아나운서로서는 이미 10년 경력이 넘은 베테랑이다. 하지만 야구장에선 처음 일 하는 만큼 차이점도 존재한다. 박 아나운서는 “농구와 진행하는 정도가 다르다. 농구는 슛, 파울 등 시작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경기 흐름에 따라 마치 캐스터처럼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야구는 중계보다는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 등판 투수 소개 등이 많다. 그리고 이닝 사이에 이벤트 진행을 한다. 단어수로 따지면 훨씬 적지만 한 번에 내보내는 에너지는 더 큰 것 같다”며 웃었다.
박 아나운서가 야구장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야구장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여성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신기할 따름. 그녀는 “상대 팀들이 kt 홈에 처음 올 때면 항상 이야기가 나온다. 다들 새롭게 봐주셔서 그 반응이 재미있다. 저희 팀 보다는 상대 팀 선수들이나 마케팅 쪽 종사자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다. 경기 감독관님들도 가끔 ‘목소리가 좋다’며 칭찬을 해주시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신생팀과 함께 하다 보니 지는 경기를 더 많이 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승리에 대한 간절함과 승리 했을 때의 기쁨에 대해 잘 안다. 그리고 그 때가 가장 보람 찬 순간이다. 박 아나운서는 “팀 성적이 좋진 않지만 홈에서 처음 위닝시리즈를 거뒀을 때 상대 팀에서 ‘아나운서 목소리에 기운이 빨려서 진 것 같다’라는 농담 섞인 말도 나왔다. 나 때문에 이긴 건 아니더라도 ‘팀 승리에 일조 했나’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고 전했다.
또한 승리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팬들이 있다는 것에도 보람을 느낀다. 그녀는 “팀이 이기면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러 나가는데, 그 외에 시구나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그라운드에 나갈 일이 없다. 그럴 때 kt 팬분들이 수훈 선수 인터뷰 때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려주시면서 ‘이겨야만 볼 수 있는 장내 아나운서다’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이기는 경기를 보고 싶다는 팬들의 뜻인데, 그런 분위기를 같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재미있고 보람차다”라고 말했다.
그런 박 아나운서에게 희소식이 생겼다. kt가 새 외국인 타자 댄 블랙의 영입과 함께 힘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는 날도 전에 비하면 부쩍 많아졌다. 박 아나운서는 “인터뷰 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혼자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런데 성적이 좋으면 할 이야기도 많고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다행히 팀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물론이고, 방송실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다”며 흡족해 했다.
박 아나운서가 꿈꾸는 건 kt가 언젠가 우승하는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녀는 “팀이 우승하는 그 날까지 함께 잘 하고 싶다. 그게 제일 먼저인 것 같다”며 개인적인 바람을 드러냈다. 아직 그 순간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올 시즌은 막내팀 kt에도, 박 아나운서에게도 분명 귀중한 경험이 되고 있는 한해다.

krsumi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