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떻게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요즘 난감해요”
정우람(30, SK)은 올 시즌 엄청난 활약상을 선보이고 있다. 원래 잘 던졌던 선수지만 군 복무 2년간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더 대단하다. 10일까지 올 시즌 30경기에 나가 31이닝을 던지면서 5승2패10홀드 평균자책점 2.03을 기록하고 있다. 익숙했던 ‘최고’의 타이틀을 되찾았다. 올해가 끝난 뒤 행사할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은 벌써부터 대박이 예고된다. 불펜 최고액은 예약했다는 시선이다.
세부지표는 더 대단하다. 피안타율은 1할2푼, 이닝당출루허용률(WHIP)은 0.84에 불과하다. 28명의 기출루자 중 홈을 허용한 주자는 딱 1명으로 이 비율은 3.6%다. 압도적인 리그 1위 성적이다. 불펜투수로서 피해야 할 장타도 거의 없다. 피장타율은 1할8푼이다. 연타를 허용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정우람은 올 시즌 직전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의 11번의 타석에서 피안타율이 제로다. 볼넷만 2개 내줬다.

이런 정우람에게 호투 비결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개 새로운 구종 추가나 경기 운영, 몸 상태, 혹은 심리적으로도 어떠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우람은 “정말 모르겠다”라고 머리를 긁적인다. 정우람은 “취재진 분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드려야 하는데 난감하다. 내가 공이 빠른 것도 아니고, 체격이 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은 변화구를 던지는 것도 아니다. 볼끝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정우람은 “그런데도 결과가 좋다. 자꾸 물어보시는 데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 불안하기도 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요즘에는 스스로 ‘특별히 나아진 것이 없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라고 묻는다. 무엇이 좋아진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다보니 ‘운이 좋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는 정우람이다. 운이 좋았다면 앞으로는 성적이 나빠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다.
하지만 하나의 장면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월 잠실 LG전이다. 정우람은 5-5로 맞선 8회 1사 2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김용의를 유격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실책으로 1,2루 상황이 됐다. 여기서 정우람은 초구 빠른 공을 박용택의 몸쪽으로 붙였다. 스트라이크존에서 약간 낮은 공이었는데 베테랑 박용택이라면 놓칠 수 없는 공이었다. ‘칠 테면 쳐보라’라는 공격적인 승부였다. 박용택이 이에 방망이를 돌리며 응전했으나 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가며 병살타로 이어졌다. 위기를 넘긴 SK는 9회 나주환의 결승 3점 홈런이 터지며 기사회생했다.
이에 대해 묻자 정우람은 “카운트를 잡기 위해 공격적인 승부를 했다. 생각보다 약간 낮게 들어갔는데 병살타로 이어졌다”라고 말하면서 “맞는 건 상관이 없다. 시즌은 길다. 지금처럼 계속 안 맞고 던질 수는 없다. 언젠가는 맞는다”라고 개의치 않는 반응을 드러냈다. 피해가기보다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승부하며 오히려 위기상황에서 타자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정우람이라는 이름 석 자가 주는 위압감을 고려하면 코너에 몰리는 쪽은 타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정우람은 SK 벤치의 관리 속에서 올 시즌 순항하고 있다. 정우람도 등판의 조정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다만 위기상황에서 오르다보니 긴장감은 커진다. 편안한 상황에서 던지는 1구와 주자가 꽉 들어찬 상황에서 던지는 1구의 피로도가 같을 수는 없다. 장기적인 시선에서 정우람을 더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우람은 “요즘 그런 상황이 많이 온다. 책임감을 느낀다”라면서 “잘한다, 잘한다 이야기가 나오니 부담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관리를 잘 하겠다. 시즌은 길다”라고 여기서 만족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기야 비결을 모르면 어떤가. 잘 던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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