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농군패션, 처절한 몸부림의 증거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6.12 06: 03

분위기는 대개 대화로 형성된다. 말이 오가면서 시끄러워지고 그 사이에서 웃음도 핀다. 그런데 SK 덕아웃은 말이 없었다. 선수들은 묵묵히 방망이를 돌리고 묵묵히 외야를 뛸 뿐이었다. 얼핏 보면 무거워 보일 수도 있는 분위기. 11일 인천 NC전을 앞둔 SK 선수단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암묵적인 분위기’라는 관용구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묵묵히 입이 아닌 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경기장에 평소보다 일찍 나와 유니폼을 입었다. 코치들도 그런 대열에 동참했다. 선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훈련을 도왔다. 최근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든 깨뜨리려는 몸짓이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엿보였다.
이날 선수들은 복장부터 바뀌었다. 선발 윤희상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양말을 올려 신었다. 이른바 농군패션이었다. 사실 농군패션 자체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양말을 올려 신는다고 해서 안타가 더 나오는 것도, 삼진을 더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무장, 그리고 팀 단합 차원에서는 도움이 된다. 모든 선수들이 똑같은 복장을 하며 동질감을 형성하고 팀 분위기를 다잡는 것이다.

벤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김무관 타격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는 등 한 차례 개편이 있었다. ‘읍참마속’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김용희 감독이 제 살을 도려냈다. 그 후 야수들 사이에서는 남모를 침묵이 돌았다. 한 선수는 “각자 타율 1푼씩만 끌어올렸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팀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11일에는 수비 불안에 시달리던 김성현이 2군으로 내려갔다. 핵심 선수의 2군행은 또 다른 벤치의 메시지를 의미했다.
비록 11일 경기는 노게임 처리됐지만 이런 일이 겹친 SK 선수단에는 비장함이 감돌고 있다. 성적 때문이다. 올 시즌 3강으로 손꼽히던 SK는 11일 현재 28승28패1무를 기록하며 승률 5할에 머물고 있다. 분명 객관적인 전력에 어울리는 성적은 아니다. 한 때 1위까지 올라갔기에 팬들의 실망감은 더 크다. 선수단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부상이 겹친 선발진,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타선 부진에 추락하는 성적을 보며 해법을 찾으려 분주하다.
거듭되는 패배에 팀 분위기가 좋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까지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SK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훈련량이 타 팀에 많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용희 감독부터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강조한다. 최근 일부에서는 ‘특타’나 ‘특별수비훈련’이 없다는 지적도 받는다. 하지만 잘 드러나지만 않을 뿐 선수들은 경기장에 일찍 나와 훈련을 하거나 경기가 끝난 뒤 밤늦게까지 특별 훈련을 하고 있다.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가지 사정이 꼬이고 있을 뿐이다.
부진한 성적에 밖으로 대놓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은 열심히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확실한 것은 이런 노력이 빛을 보려면 성적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아무리 남모를 땀을 흘린다고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묻히거나 평가 절하될 뿐이다. 절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SK가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향후 레이스의 좋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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