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얻어맞을 바에야 '네가 쳐라' 싶었다. 근데 진짜로 치더라".
한화 김성근(73) 감독은 2012~2014년 3년 동안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이끌었다. 설자리가 없었던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끝에 모두 23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선수가 바로 LG 내야수 황목치승30)이다.
황목치승은 중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국제고-아세아대학에서 야구를 이어갔고, 2012년 원더스 멤버로 프로행을 꿈꿨다. 2013년 10월 LG에 입단하며 원더스가 배출한 10번째 프로선수가 됐다. 지난해부터 백업 멤버로 1군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2일 대전 한화전에서 처음 김성근 감독을 적이 돼 만났다. 7-7 동점으로 맞선 연장 10회초 무사 만루에서 10구 승부 끝에 우중간 떨어지는 2타점 적시타를 작렬시켰다. 적으로 만난 '옛 스승' 김성근 감독을 울린 결정타 한 방으로 주인공이 됐다.
경기 후 황목치승은 "김성근 감독님 앞에서 결승타를 쳐서 기분이 더 좋았다. 상대팀 감독님이시지만 잘하는 모습,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감독님께서도 마음속으로나마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스승에 대한 속마음을 표현했다.
김성근 감독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목치승의 결승타에 대해 김 감독은 "이왕 얻어맞을 바에 '네가 쳐라' 싶었다. 근데 진짜로 치더라"며 허허 웃은 뒤 "옛 제자와 대결이란 것에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황목치승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 kt 김진곤도 좋아졌다. NC 윤병호도 우리랑 경기할 때 '그냥 삼진 당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끈질기게 치더라. 원더스 선수들과 프로 선수들은 큰 차이 없다. 이런 것 보면 원더스의 가치가 있는데 왜 없앴냐"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13일 대전 경기에서는 한화 송주호 신성현, LG 황목치승 김영관 등 4명의 원더스 출신 선수들이 활약했다.
프로에서 적으로 만난 원더스 제자들이지만 김 감독은 애정을 숨길 수 없었다.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안다. 황목치승은 "1군에 올라온지 얼마 안 돼 경황이 없어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김 감독은 "얘는 아직 인사하러 오기 힘들 것이다. 인사 오면 안 된다. 그냥 경기해야 한다"고 마음을 헤아렸다.
이심전심,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했다. 비록 원더스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KBO리그에는 원더스 후예들이 살아남았다. 황목치승은 "팀이 없어졌기 때문에 프로에 온 사람들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함께 뛴 친구·선배·후배들이 '원더스에 있어서 좋았다'라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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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