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을 내보내기만 하면 호투한다. 두산 베어스가 좌완들의 연이은 생애 최고 피칭에 웃고 있다.
지난 11일 잠실 LG전에서는 진야곱이 7이닝 2피안타 9탈삼진 1볼넷 무실점 호투해 승리투수가 됐다. 13일 잠실 NC전에서는 더스틴 니퍼트의 대체 선발인 허준혁이 선발로 나서 6이닝 4피안타 3탈삼진 2볼넷 무실점으로 NC의 강타선을 틀어막고 승리를 챙겼다. 현 시점의 선발 로테이션에는 장원준과 유희관까지 총 4명의 좌완이 있다.
그야말로 좌완 왕국이다. 잘 알려진 대로 두산은 유희관 등장 이전까지 좌완투수가 없는 팀으로 유명했다. 1988년 윤석환이 13승 4패 14세이브를 기록한 이후 2013년 유희관이 10승 7패 1세이브 3홀드로 두 자릿수 승리에 성공하기까지 25년이 걸렸다. 두산 역사에서 두 선수 사이에 10승을 거뒀던 토종 좌완투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10승이 보장된 유희관과 장원준은 물론, 커나가는 좌완들도 즐비하다.

특히 13일 잠실 NC전에서 보여준 허준혁의 투구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두산은 역대 두 번 있었던 2차 드래프트에서 많은 선수를 빼앗겼지만 아직까지 이 제도를 통해 다른 팀에서 두산으로 와 크게 꽃을 피운 사례는 없었다. 허준혁은 두산 최초의 2차 드래프트 성공사례로 발전할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이날 승리를 따낸 뒤 인터뷰에서 “경기 전에 집에 있을 때부터 길면 3이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회초 첫 타자(박민우)를 상대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밸런스도 잡혔다”고 말한 허준혁의 피칭은 깜짝 호투인 것 같으면서도 깜짝 호투가 아니다. 철저히 준비된 카드였다는 의미다. 얼마 전까지 퓨처스 총괄코치였던 한용덕 투수코치는 시즌 초부터 1군에 올라올 만한 투수가 있냐는 질문에 항상 허준혁의 이름을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지난해까지는 허준혁 하면 불펜에서 잠깐씩 나와 던지는 좌완 스페셜리스트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선발로 전환을 꾀했다. “퓨처스 팀 스프링캠프(대만)에서 선발로 많이 던지면서 좋아졌다. 불펜도 좋지만 선발도 매력이 있다”며 허준혁은 지금의 보직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밝혔다.
한용덕 코치는 허준혁에 대해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허준혁 본인은 “체구는 호리호리해도 겨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서 몸 상태는 (지금까지 중) 가장 좋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허준혁은 오프시즌에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루에 2시간씩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허준혁 같은 좌완이 있어 두산은 니퍼트의 공백을 무리 없이 메울 수 있었다. 공백을 느끼기는커녕 마치 니퍼트가 잘 던진 경기처럼 편안하게 이겼다. 니퍼트의 부상은 악재지만 허준혁이라는 새로운 선발 카드를 얻었으니 전화위복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불펜에서는 상무 출신의 이현호가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최근 1군에 합류한 이현승이 자리를 잡고 함덕주가 부진에서 벗어나면서 장민익을 비롯한 퓨처스리그의 왼손 투수들의 기량까지 지금보다 향상되면 두산은 선발과 불펜 모두 좌완들이 이끄는 진정한 좌완 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두산은 ‘좋은 좌완투수 많은 팀’의 이미지를 충분히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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