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의 더그아웃. 은퇴식을 위해 구장을 찾은 유동훈(38) 코치와 김상훈(38)코치. 이미 작년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고 미국 연수를 거쳐 재활코치와 2군 배터리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구단은 타이거즈 유니폼만 입고 줄곧 뛰었던 이들에게 성대한 은퇴식을 마련했다.
두 선수에게 취재기자가 물었다. 당신이 매긴 선수로서 평점은 몇 점입니까? 김상훈은 "70점에서 75점이나 될까요". 유동훈은 "60점 밖에 줄 수 없어요". 선수로서 존재감 있는 활약을 했던 이들이 자신의 평점을 인색하게 매긴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김상훈 코치는 2000년 입단과 동시에 주전 포수 마스크를 썼다. 신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광주일고 고려대 출신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김상훈은 "아휴, 내가 먹은 욕도 많았어요. 얼마나 심했는데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번번히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면서 우승을 이루지 못한 포수라는 말을 들었고 2009년 입단 10년째 우승을 했다.

우승과 함께 FA 계약과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다시 부상과 부진이 겹쳤다. 제대로 활약을 못한 자책감이 스며있었다. 주전포수로서 김응룡,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조범현, 선동렬 등 6명의 감독을 경험하면서 말못할 속사정도 많았다.
그는 후배들을 위해 덕담을 남겼다. "지금 1군에 있다면 하루 하루, 한 경기 한경기를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고 싶다. 후회 없는 선수생활을 해야 한다. 지금은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 환경도 좋고 잘하면 연봉도 많이 받는다. 이것을 인식하고 부상관리를 잘하면서 오랫동안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동훈은 프랜차이즈 출신은 아니다. 장충고 성균관대 출신으로 99년 쇠락한 왕조 해태에 입단해 마운드의 핵심멤버로 맹활약을 했다. 신인시절 선발투수와 불펜투수로 155⅓이닝을 소화하며 존재감을 빛냈다. 3년 동안 이렇다할 활약이 없다 2004년에는 무려 68경기에 출전해 7승5세이브7홀드, 평균자책점 2.98로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병역문제 때문에 2005년부터 4년간 마운드에 돌아올 수 없었다. 그대로 야구인생이 끝나는 듯했으나 절치부심 준비를 했고 2008년 복귀해 55경기에서 6승2세이브8홀드를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09년 6승22세이브10홀드, 평균자책점 0.53을 거두며 10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후 필승맨으로 제몫을 못했다. 그는 "계속 해주었어야 하는데 못했다"면서 아쉬움을 피력했다.
유동훈은 "나는 시행착오도 많았던 굴곡 있는 야구인생을 보냈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열정을 갖고 성실함, 그리고 책임감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1,2군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언제든 준비하고 기다리면 기회가 올 수 있다. 성실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유니폼을 벗고 사회에 나와서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살 수 있다"고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남겼다.
김상훈은 15년, 유동훈은 16년 동안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정작 자신들은 70점, 60점 짜리라고 인색한 점수를 매겼지만 성공한 선수들이었다. 그들을 사랑했던 가족들이 뒤에 있었고 동료 후배들과 1만명의 팬들은 함께 눈물과 박수를 보내며 고별식을 함께했다. 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진 은퇴식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야구인생을 굿굿하게 버텨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브라보! 브라보! 나의 야구인생'이었다. 후배들에게 결코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던 2009 우승 배터리의 퇴장식이었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