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38, 두산 베어스)은 통산 2000안타 달성 후 스스로를 “이승엽 같은 대선수는 아니지만 파이팅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평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떤 선수도 덕아웃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하나만으로 프로에서 17시즌을 버틸 수는 없다.
대졸로 입단해 고졸 신인들에 비해 4년이나 늦게 프로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성흔이 20년 가까이 프로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개인 성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홍성흔은 아무나 달성할 수 없는 200홈런, 어떤 우타자도 달성한 적이 없던 2000안타를 해내며 당당히 KBO리그의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번 시즌 타격 부진으로 힘든 시간들이 계속됐지만, 최근 맹타로 페이스를 끌어 올리며 홈에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기록을 세운 것은 의미가 있다. 기록 자체만 놓고 봐도 축하받을 일이지만, 길었던 부진 흐름을 씻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자신의 힘으로 마련했다는 점이 더욱 고무적이다.

한때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기도 했던 홍성흔은 “그동안 죽을 만큼 괴로웠다. 아내도 그렇고 화리(딸)도 이제 댓글을 다 본다”며 힘들었던 시간을 되돌아봤다. 올해 유난히 희생번트가 늘어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의미 없이 아웃되면 팀 분위기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감독님은 원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서슴없이 번트를 했다”는 것이 홍성흔의 설명이다.
하지만 입단 첫 해인 1999년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한 마디가 홍성흔을 다잡게 만들었다. “김인식 감독님이 2군에 보내셨을 때도 필요한 선수라서 보내는 것이라 말씀해주셨는데 이번에 김태형 감독님도 ‘좌절하지 마라. 네가 벤치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며 홍성흔은 두 사령탑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홍성흔은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파이팅 하나로 시작해서 파이팅 하나로 먹고 사는 것 같다. 이승엽 같은 대선수는 아니지만 선수들과 융화되는 것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이것을 잃지 않고 계속 한다면 더 많은 안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지금은 페이스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홍성흔이 나왔을 때 이 선수가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찾는 것이 목표다”라고 답했다.
홍성흔이 남은 선수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앞에서 했던 말 속에 제시된 것이나 다름없다. 단기적으로는 최근 살아나고 있는 타격감을 완전히 찾아야 한다. 한 명의 타자로 중심타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회복하면 그때부터는 클럽하우스 리더로서의 모습도 자연스레 살아나 홍성흔이 가진 가치를 그라운드 안은 물론 덕아웃에서도 100%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당대 넘버원으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홍성흔은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한 명의 선수로 누릴 수 있는 영광은 모두 누렸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홍성흔은 끝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 "양준혁 선배가 내야 땅볼을 치고도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고 나도 오래 뛰면서 저런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홍성흔의 말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뛰겠다는 속마음이 묻어났다. 선수생활을 더 오래 지속한다면 양준혁의 기록(2318안타)에도 근접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궁극적인 목표는 묻지 않아도 우승일 것이다. 두산이 그를 데려온 것은 팀 분위기 상승을 통해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홍성흔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다. 두산도, 그리고 홍성흔도 2001년 이후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두산은 홍성흔과 함께, 홍성흔은 두산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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