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불펜 보직을 ‘공식적’으로 바꿨다. 정우람(30)이 마무리 보직으로 이동하고 시즌 초반부터 지금까지 마무리 몫을 수행하던 윤길현(32)이 중간계투로 보직을 바꾼다. 예견된 수순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김용희 SK 감독은 16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마무리 공식 교체를 발표했다. 정우람이 뒷문으로 이동하는 것이 골자다. 마무리 몫을 하던 윤길현은 중간으로 이동해 활용폭을 넓히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정우람과 윤길현은 박희수 박정배가 부상으로 빠져 있는 SK의 현 불펜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들이었다. 두 선수의 보직을 바꿔 활용성을 극대화시키겠다는 것이 이번 교체의 배경이다.
스프링캠프부터 정우람 마무리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던 SK 벤치다. 다만 정우람이 2년간의 군 복무 공백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마무리라는 부담 있는 보직을 주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윤길현이 일단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정우람의 컨디션이 거의 완벽하게 올라왔다. “4~5월 정도는 지켜보겠다”고 이야기한 김 감독도 정우람을 마무리로 돌리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정우람은 올 시즌 리그 최고의 중간계투 요원 명성을 한번에 되찾았다. 2년의 공백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33경기에서 5승2패1세이브10홀드 평균자책점 1.89를 기록했다. 0.81의 이닝당출루허용률(WHIP), 1할1푼2리의 피안타율 등 불펜투수 지표에서 모두 최고 성적을 내고 있다. 그렇게 팀 내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인 정우람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마무리를 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지금 패턴에 변화를 줘야 하느냐라는 의견도 몇몇 부분에서 설득력이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시기에 투입해 상대 기회를 지울 수 있는 정우람의 임무를 ‘마무리’로 한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SK는 올 시즌 7회나 8회 위기 상황 때 정우람을 투입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 기출루한 주자에게 거의 홈을 허용하지 않은 정우람은 그런 위기를 막고 마무리 윤길현에게 좀 더 편안한 상황에서의 등판 기회를 준 것이 사실. 그러나 정우람이 마무리로 간다면 7회나 8회 초반의 상황에서 투입하기는 부담감이 있다. 만약 그 앞 상황에서 위기가 온다면 SK 불펜도 한 차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이를 테면 1점차로 앞선 8회 무사 1루의 상황에서 지금까지는 정우람을 투입해 안정적인 상황이 될 때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정우람은 공격적인 승부를 펼치는 선수고 그에 따라 투구수도 많지 않은 선수였다. 4타자, 많은 5타자도 20구 정도에서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뒤에 받칠 선수가 없는 마무리는 사정이 다르다. 여기에 전날 등판 현황까지 있다면 8회 무사나 1사에 투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또한 최근 SK는 세이브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팀이었다. 윤길현의 마지막 세이브는 5월 19일 한화전이었다. 정우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윤길현이 나쁜 마무리 투수도 아니었다. 윤길현은 올 시즌 25경기에서 2패12세이브 평균자책점 3.09를 기록 중이다. 물론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12차례의 세이브를 기록하는 동안 블론세이브는 한 번이었다. 마무리는 결과로 말하는 포지션이다. 이런 기록은 타 팀 마무리 투수들에 비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윤길현이 전업 마무리 첫 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 좋은 성적이다. 정우람의 활용폭을 지금처럼 두고, 윤길현에게 1이닝 정도를 맡겨 성공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여기에 정우람의 이동으로 SK는 왼손 불펜요원이 없는 상황에서 시즌을 치러야 한다. 고효준이 있지만 롱릴리프 역할이다. 승부처에서 투입되는 대기 요원은 아니다. 진해수가 있지만 올 시즌 등판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2군에 내려간 지 오래다. 현재는 투구폼 교정 단계에 있고 언제쯤 정상적인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박희수의 복귀는 아직 먼 일이다.
문광은과 윤길현은 분명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다. 좌타자 상대로도 올 시즌 성적이 나쁘지 않다. 문광은의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1할7푼1리, 윤길현은 1할8푼8리다. 그러나 좌타자는 오른손 타자에게 항상 부담되는 존재임은 분명하며 왼손 투수에 약한 좌타자도 분명 존재한다. 만약 이런 문제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면 정우람의 마무리 전환은 찜찜함만 남길 수 있다. 잦은 보직 변경은 혼란만 남긴다. 지금 결정한 방안이 현명한 선택이 되어야 한다. 결론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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