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묻자,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자기반성이었다. LG 트윈스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36)이 ‘출루 귀신’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했다.
박용택은 지난 19일 목동 넥센전에 1번 타자겸 좌익수로 선발 출장, 1회초 송신영을 상대로 리드오프 홈런을 쏘아 올렸다. 그러면서 박용택은 프로 통산 162호 홈런을 기록했고, LG 트윈스 34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터뜨린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경기 전까지 박용택은 이병규(9번)와 함께 LG 프랜차이즈 통산 홈런 순위 공동 1위에 자리했었다.
꾸준함의 결과다. 한 시즌 최다홈런은 18개에 불과하지만, 박용택은 2002년 입단 후 매 시즌 더 나은 타자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땀을 쏟았다. 입단 당시만 해도 정교함과 장타력보다는 도루에 능했고, 프로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도루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박용택은 LG 구단 신기록을 세운 후 “프로 입단 당시만 해도 통산 홈런 10개나 칠 수 있을까 싶었다. 원래 나는 전형적인 1번 타자였다”며 “매년 더 나은 타격을 하기위해 노력했고, 그러면서 홈런도 이정도 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박용택은 KBO리그 역사상 두 번째 200홈런 200도루 가입도 가능하다. 이미 통산 도루가 286개다. 홈런 페이스를 유지하면 박재홍 이후 처음으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운다. 지난해 LG와 4년 FA 재계약을 채결한 만큼, 계약 기간에 200-200을 달성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박용택은 200홈런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덧붙여 올해 자신의 전략이 실패했다며 아쉬워했다. 의외였다. 박용택은 올해 스프링캠프에 앞서 장타력 향상을 목표로 내걸었고, 이미 두 자릿수 홈런(10개)을 기록했다. 올 시즌 장타율 0.502로 2009시즌 후 처음으로 장타율 0.500 이상을 찍고 있다. 홈런페이스는 커리어 하이. 통산 첫 20홈런 이상이 보인다.
그럼에도 박용택은 “아무래도 홈런은 의식 할수록 독이 되는 것 같다. 올해 장타에 욕심을 내면서 타격 밸런스가 흔들렸다. 그게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홈런은 치고 싶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홈런 욕심은 버린 채 타격할 것이다. 아직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밸런스가 안 나오고 있다. 홈런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내 밸런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용택은 2012시즌부터 2014시즌까지 총 1644타석 중 1번 타자로서 가장 많은 657타석을 소화, 타율 3할3푼6리 출루율 4할2푼1리로 맹활약했다. 지난 3시즌 동안 1번 타자 중 박용택보다 높은 출루율을 기록한 이는 없다. 예리한 선구안과 안정된 타격 밸런스로 경기당 2회 이상의 출루는 기본이었다. 해결사로서도 만점이었다. 지난 세 시즌 득점권 타율 3할7푼8리, 2012시즌에는 득점권 타율 4할1푼6리로 찬스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였다.
하지만 올해 장타력 향상을 꾀하면서 출루율이 3할5푼1리로 뚝 떨어졌다. 타율 또한 2할9푼3리로 통산 타율 3할1리에 못 미친다. 득점권 타율은 2할4리에 불과하다. 박용택은 스프링캠프 기간 중 “3-4-5(타율 3할·출루율 4할·장타율 0.500 이상)에 도전해보겠다”고 했었는데, 장타율 외에 타율과 출루율은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양상문 감독은 지난 17일부터 박용택을 1번 타순에 고정시킬 것을 발표했다.
박용택은 천재가 아니다. 프로에 들어오자마자 1군 무대서 활약했고, 국가대표 선수로서 태극마크까지 달았으나, 순탄한 커리어는 절대 아니었다. 매 시즌 시련을 맞이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해왔다. 30대 중반에 통산 타율 3할을 넘긴 타자는 박용택이 유일하다.
박용택은 올 시즌도 수차례 타격 폼을 바꾸며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잃어버린 밸런스를 찾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의도한대로 출루율은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4월까지 출루율 3할4푼2리를 기록했으나, 5월에는 출루율 3할4푼9리, 6월 출루율은 3할6푼2리를 찍고 있다. 이대로라면 출루율 4할대 복귀도 불가능은 아니다. 박용택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아직 정규시즌은 반 이상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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