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불꽃을 태운 탓일까. 저스틴 벌랜더(32, 디트로이트)의 하락세가 눈에 띄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은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단 4명만이 가지고 있었던 수준의 대업이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는 우려다.
벌랜더는 20일(이하 한국시간)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으나 6⅔이닝 동안 10피안타(3피홈런) 소나기를 맞으며 6실점하고 패전투수가 됐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역사적인 MLB 3000안타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올 시즌 삼두근 부상으로 시즌 출발이 늦었던 벌랜더는 시즌 첫 등판이었던 14일 클리블랜드전(5이닝 2실점)에 이어 두 번째 등판에서도 그렇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벌랜더의 MLB 300번째 등판이었다. 2005년 디트로이트에서 MLB에 데뷔한 벌랜더는 300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서 통산 152승90패 평균자책점 3.54의 기록을 보유 중이다. 2011년에는 24승5패 평균자책점 2.40의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등 의심의 여지가 없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으며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8년 연속 200이닝을 기록했다.

MLB 역사상 첫 300번의 등판에서 절반인 150승 이상, 그리고 18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벌랜더 이전에 4명밖에 없었다. 톰 시버(통산 311승), 로저 클레멘스(통산 354승), 드와이트 구든(통산 194승), 페드로 마르티네스(통산 219승)가 그 주인공들이다. 현역 선수로서 현재 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벌랜더 외에 아무도 없다. 현역 최고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의 경우 남은 75경기에서 47승을 따내야 한다. 장담할 수 없다. 벌랜더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이처럼 현역의 중간까지를 화려하게 보낸 벌랜더지만 하향세가 뚜렷하다는 것은 걱정거리다. 벌랜더의 기록은 2011년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2012년 2.64를 기록한 뒤 2013년(3.46)과 2014년(4.54)까지 거의 1점씩이 떨어졌다. 역시 젊은 시절 너무 많이 던진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벌랜더는 만 26세 시즌이었던 2009년 240이닝, 28세 시즌이었던 2011년 251이닝을 던졌다.
벌랜더의 구속 저하는 이미 수차례 지적된 것이며 올해도 그다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 어렵다. 최고 구속은 95마일(153㎞) 이상에서 형성되고 있으나 평균 구속이 95마일 이상을 기록하던 예전에 비해서는 3마일이나 떨어진 모습이다. 지난 2경기에서도 예전의 압도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꾸역꾸역 상대 방망이를 이겨내는 인상이 강했다. “지금 구위로는 3~4선발 자리에 만족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벌랜더의 남은 커리어가 클레멘스가 될지, 구든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구든의 경우는 지나친 음주와 마약 등 자기관리에 실패한 케이스였으나 어린 시절 너무 많이 던진 것도 경력의 마지막에서 발목을 잡았다. 이미 마이너리그에서 많은 이닝을 던지고 MLB에 올라왔던 구든은 데뷔 시즌이었던 1984년 218이닝을 던진 것에 이어 1985년에는 276⅔이닝으로 정점을 찍었다. 결국 어깨에 탈이 났고 1994년부터 2000년까지 6년 동안 40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벌랜더는 수술을 고려해야 할 정도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올 시즌을 앞두고는 삼두근에 부상을 입어 결국 MLB 데뷔 후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몸에도 서서히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예상보다 재활 기간도 길어지는 바람에 첫 두 달을 날렸다. 9년 연속 200이닝은 어려워진 가운데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도 장담할 수 없다. 벌랜더의 올 시즌은 경력의 반등과 추락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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