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곧 기록입니다. 숫자만으로도 녹색 다이아몬드가 머릿속에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야구만이 갖는 매력이 아닐까요. 그라운드의 숨은 기록을 새롭게 밝혀내 독자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
주자가 꽉 들어찬, 말 그대로 ‘만루’는 타자로서는 천금의 기회다. 짧은 안타, 빗맞은 안타 하나라도 1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경기 중 결코 흔히 찾아오지 않는다. 최고급 상차림이다. 그래서 놓치면 더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면 만루 기회에서 가장 약했던 팀은 어디었을까.
한화는 20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1-4로 졌다. 마운드가 NC 타선을 비교적 잘 막았지만 역시 타선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빌미가 됐다. 끌려가는 상황에서 상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만루 기회를 세 번이나 날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6회 1사 만루에서는 최진행의 불운이 있었고 7회 무사 만루에서는 강경학의 땅볼로 1점을 내는 데 그쳤다. 9회 마지막 공격에서도 1사 만루 기회를 잡았으나 강경학이 병살타로 물러났다. 특타도 만루 울렁증은 극복하지 못했다.

이처럼 만루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팀 분위기는 처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를 막아내는 상대 마운드는 사기가 올라간다. 단순히 1~2점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타자가 유리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타자는 반드시 점수를 내야 하는 반면, 투수들은 최소한의 실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 오히려 수비는 편한 감도 있다. 포스아웃 상황이 되기 때문에 다음 플레이에 대한 계산이 상대적으로 편하다. 그래서 타자들도 투수들 못지않게 압박감을 많이 받는다. 특히 발이 느린 타자라면 더 그렇다.
20일까지 올 시즌 리그 전체의 만루시 타율은 2할9푼3리로 시즌 평균(.272)을 웃도는 편이다. 만루 기회가 가장 많았던 팀은 넥센, 그리고 만루에서 가장 강했던 팀도 넥센이었다. 넥센은 올 시즌 99번의 만루 기회에서 3할4푼5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홈런 2개를 포함, 만루에서만 74타점을 쓸어 담았다. 넥센 타선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2위는 KIA로 3할3푼3리였다. KIA는 롯데와 함께 만루홈런(5회)이 가장 많은 팀이다. 만루 기회를 잘 살렸다고 볼 수 있다. 두산(.333), 롯데(.321), 삼성(.317), SK(.304)가 그 뒤를 따랐다. 여기까지가 3할 이상의 만루시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팀이며 kt(.273)도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한 팀이 있다면 부진한 팀도 있는 법. 시즌 초부터 ‘만루 징크스’에 시달렸던 LG는 만루시 타율이 1할7푼9리에 불과하다. 여기에 만루시 장타율이 3할1푼3리에 그치는 등 만루라는 기회를 대량득점으로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칭스태프도 딱히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의 부진이다. NC도 2할5푼5리로 상대적으로 만루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희생플라이(8개)는 비교적 많아 54타점을 기록했다. 타점을 놓고 보면 다른 팀에 비해 그다지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또 고민이 있는 팀은 한화다. 한화는 올 시즌 90번의 만루 기회를 맞이했다. 이는 넥센에 이은 리그 2위 기록. 그러나 타율은 2할6푼7리로 리그 8위였다. 기회는 많은데 친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 팬들의 머릿속에 더 남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희생플라이도 4개로 리그 최하위권이었다. 여기에 리그 2위인 6번의 병살타를 기록했다. 반대로 밀어내기 사사구는 11차례로 LG(13회)에 이어 2위였다. 만루 홈런은 3번(리그 공동 3위)으로 적지 않은 편이었다.
상대적으로 공격 쪽에서는 더 짜릿한 느낌을 주는 2사 만루시 타율은 SK가 3할1푼8리로 리그 1위, LG가 1할5푼8리로 리그 최하위였다. 한화(.229), 삼성(.188)도 하위권이었다. 반대로 SK는 더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는 무사 만루 타율이 1할4푼3리로 리그 꼴찌였다. 무사 만루시 타율이 1할대인 팀은 SK가 유일하다. 꼭 아웃카운트에 불이 두 개 들어오고 나서야 방망이가 터졌다.
경기 초반으로 기선을 잡을 수 있는 1~3회 만루시 가장 약했던 팀은 LG로 8푼7리, 경기 막판이라고 할 수 있는 7~9회 만루시 가장 약했던 팀은 SK로 1할1푼1리였다. 한화(.130), kt(.118), SK는 경기가 마지막으로 흘러갈수록 만루 기회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개인으로 보면 누가 가장 고개를 많이 숙였을까. 올 시즌 만루 기회를 4번 이상 잡은 선수 중 안타가 하나도 없었던 선수는 7명이었다. 최진행(한화)은 11타석에서 볼넷 3개를 골랐을 뿐 8타수 무안타, 오지환(LG)과 박계현(SK)은 5타수 무안타였으며 손시헌(NC) 정성훈(LG) 이명기(SK)도 안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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