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결과가 너무 나쁘게 나타나고 있다. SK 불펜이 정우람(30, SK)의 마무리 전환 이후 사정 없이 흔들리고 있다. 중간에서 가장 믿음직스럽게 상대 위기를 막아냈던 정우람의 공백에 SK가 경기 후반 힘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양상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SK는 2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2-2로 맞선 7회 1사 2루에서 박한이에게 결승 투런을 맞은 것을 끝내 만회하지 못하고 졌다. 한화의 대전 주중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거두고 간신히 살아난 분위기는 삼성에게 2연패를 당하며 다시 가라앉았다. 승률도 5할로 떨어졌다.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SK다.
어차피 상대 선발 투수가 윤성환임을 고려하면 많은 점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경기였다. 빡빡한 승부가 예상됐고 SK도 선발 윤희상이 잘 던지며 실제 그런 흐름이 이어졌다. 수비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이 있었으나 어쨌든 0-2로 뒤진 6회 이재원이 결정적인 동점 적시타를 터뜨리며 경기는 원점으로 돌려놓은 상황. 윤희상 윤성환의 투구수가 100개로 향하고 있는 양상에서 불펜 싸움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불펜을 자랑하는 두 팀의 정면 승부였다.

그러나 SK는 또 한 번 불펜 싸움에서 졌다. 7회 1사 2루에서 선발 윤희상을 구원한 윤길현이 박한이에게 결승 투런을 맞은 것이다. 이번주부터 정우람을 공식 마무리로 돌린 SK는 윤길현 문광은을 총동원해 8회 혹은 9회 정우람까지 다리를 잇는다는 계산이었으나 17일부터 5일 동안 네 번이나 마운드에 오른 윤길현의 구위는 떨어져 있었다. 결국 윤길현은 자신의 몫을 하지 못했고 SK는 막판까지 어려운 승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 한화전에서 정우람의 공백을 느낀 SK였다. 17일과 18일 이기기는 했지만 찜찜함을 남겼다. 3~5점의 비교적 여유 있는 점수차에서도 정우람 앞에 나선 중간투수들이 한화의 추격을 허용하며 결국 불펜투수들이 총동원되는 체력적인 소모를 낳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정우람이 있었다면 불펜소모를 좀 더 줄일 수 있었다는 계산은 나온다. 정우람의 올 시즌 구위와 기록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19일 경기에서는 그런 불펜소모 탓에 문광은 정우람이 대기하지 못했고 불펜 싸움에서 진 SK였다. 21일에도 그랬다. 삼성의 타순은 1번 박한이부터 6번 구자욱까지 나바로를 제외한 모든 타자들이 왼손이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정우람이 흐름을 끊기 딱 좋은 순번이었다. 하지만 뒤에 대기해야 하는 정우람 카드를 쓰지 못한 SK는 윤길현 문광은에게 의존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9회 등판한 정우람은 7회와 같은 순번(박한이 박해민 나바로)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윤길현 문광은의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좋고 박한이는 왼손투수를 상대로 올 시즌 4할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정우람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뒤에 아껴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지고 안 낸 것이 아닌, 써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삼성은 박해민(.240) 최형우(.274) 이승엽(.225) 구자욱(.247)이 모두 왼손에 약한 팀이었다. 8회 추격점을 생각하면 정우람을 쓸 수 없었다는 점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재고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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