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가 특급 토종 좌완 2명의 활약에 활짝 웃는다. 믿었던 외국인 선수들이 기대만큼 해주지 못했음에도 호시탐탐 선두까지 엿보고 있다.
지난겨울 FA 최대어 장원준을 영입한 두산은 선발진이 가장 강한 팀으로 꼽혔다. 장원준과 유희관이라는 강력한 두 명의 좌완을 가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재계약한 더스틴 니퍼트, 유네스키 마야를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니퍼트는 지난 4년간 52승을 거둔 부동의 에이스였고, 마야는 평균 이상의 구위와 제구력으로 이닝이터가 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그림이 생각과는 달랐다. 마야는 노히트노런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2승 5패, 평균자책점 8.17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올리고 한국을 떠났다. 니퍼트도 3승 3패, 평균자책점 4.67로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이다. 개막을 앞두고는 골반 통증, 지금은 어깨 충돌 증후군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져 있다. 전반기 아웃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한국에 온 뒤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해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은 38승 27패로 선두 삼성에 0.5경기 뒤진 2위다. 유희관과 장원준이 리그 최강의 토종 원투펀치로 자리를 잡아준 덕분이다. 5선발로 내정됐던 이현승이 시범경기에서 부상으로 이탈한 뒤 들어온 진야곱 역시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희관의 활약상은 실로 눈부시다. 평균자책점(2.85)은 리그 2위, 10승으로 다승 부분에서는 알프레도 피가로(삼성)와 공동선두다. 던진 이닝도 94⅔이닝으로 4위인데, 이 부문 1위인 헨리 소사(LG)보다는 2경기 적게 던졌다. 6이닝이 기본인 유희관의 이닝 소화력을 감안하면 경기 수가 같아졌을 때 현재 106이닝인 소사를 따라잡을 가능성도 있다.
장원준 역시 정상급 좌완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23일 잠실 SK전에서 6이닝 6피안타 8탈삼진 1실점 호투로 10-1 승리를 이끈 장원준은 7승 3패가 됐다. 3.44인 평균자책점은 리그 5위에 해당한다. 잠시 1군 엔트리에서 빠지기도 했지만 73⅓이닝으로 자신의 1차 목표인 170이닝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7승을 거둔 직후 장원준은 “초반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가운데로 던졌다. 계속 1회에 점수를 주고 부담이 생겨서 점수를 안 주려고 했다”고 한 뒤 “카운트를 계속 유리하게 하면서 투구 수를 줄여 이닝을 많이 채우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더 많은 이닝에 대한 의욕은 주변의 관심 이상이다. 장원준은 “7회에도 올라가려다가 점수 차가 많이 나서 내려왔다”고 할 정도로 최대한 마운드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으며 우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 좌타자를 만났을 때는 커브를 결정구로 활용해 재미를 본 장원준은 앞으로도 투구 수 관리에 더욱 중점을 둘 방침이다. 그는 “매달 2승씩 하자고 생각했는데 계획대로 되고 있다. 이닝은 좀 더 길게 가고 싶다. 투구 수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산의 토종 좌완 원투펀치는 함께 168이닝을 막아내며 17승 5패, 평균자책점 3.11을 합작하고 있다. 원투펀치가 만든 17승은 삼성(피가로-클로이드 16승), NC(해커-손민한 15승), KIA(양현종-스틴슨 15승)를 제치고 KBO리그 전체 1위다. 평균자책점에서도 양현종-스틴슨 듀오(2.65)에 이은 2번째다.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앤서니 스와잭이 특유의 위력적인 구위를 앞세워 기대를 현실로 바꾼다면 두산은 강력한 3선발을 보유하게 된다. 여기에 퓨처스리그에서 갈고닦은 좌완 허준혁 역시 2경기에서 11⅓이닝 무실점 중이다. “이왕이면 전반기에 10승을 하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승리하지 못해도 팀이 이기면 괜찮다”는 장원준의 바람이 이뤄지고 니퍼트까지 늦지 않게 돌아오면 이미 ‘두 개의 탑’을 가진 두산은 더 높은 곳을 올려다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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