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김성근의 팔자인가봐”
김성근 한화 감독은 최근 쏟아지는 팀 내 악재에 대한 질문에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한화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의 부진에 좀처럼 100% 전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선전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극과 극이다. 여기에 25일에는 최진행의 도핑 사건까지 터지며 또 한 번 팀이 어수선해졌다. 팀 주축 타자를 30경기나 잃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정도로 이미지 및 분위기에 타격이 크다.
김성근 감독은 이와 같은 이야기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팔자’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간 적은 없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만했다. 재일교포 출신의 차별을 받았던 현역 시절, 부임과 경질을 반복했던 감독 시절 모두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그와 싸우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자부심 속에는 해결책에 대한 실마리도 녹아 있다.

팀 사정이 어렵지만 김 감독의 사전에 포기는 없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다. 그런 김 감독은 “SK 때는 김광현과 박경완도 없이 했었다”라고 떠올렸다. 2009년의 이야기다.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던 SK와 김성근 감독은 2009년 팀 전력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선수 없이 시즌 막판을 보냈다. 누구라도 낙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21경기에서 12승2패 평균자책점 2.80의 환상적인 성적을 내고 있었던 에이스 김광현은 타구에 맞아 손목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됐다. 김 감독이 ‘팀 전력의 절반’이라고 극찬했던 안방마님 박경완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그해 6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대안을 찾았다. 그리고 두 선수 없이도 시즌 막판 연승을 거듭하며 한국시리즈까지 내달렸다.
외국인 선수 게리 글로버와 카도쿠라 켄, 송은범을 중심으로 선발진을 짜고 고효준 전병두 채병룡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벌떼 불펜은 언제든지 출격 준비가 되어 있었다. 포수 포지션에서는 정상호가 박경완의 공백을 메우며 맹활약했다. 비록 KIA에 막혀 한국시리즈 3연패에는 실패했지만 SK의 투혼에 많은 이들은 박수를 보냈다. 차라리 그 때와 비교하면 ‘돌아올 희망’이라도 있는 지금은 사정이 나을 수도 있다.
전력 공백이 워낙 큰 터라 김 감독도 아직은 완벽한 구상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완벽한 구상을 세울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만간 김경언이 부상을 털고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미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었던 이성열 이종환 등의 타자 자원들도 있다. 이런 환경까지 고려하면 현재 최진행의 공백은 당시보다는 작을 수도 있다. 김 감독이 2009년을 떠올린 이유는 힘들지만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의 무의식적인 표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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