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혁을 신데렐라로 만든 세 가지 변화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5.06.27 06: 00

"제구력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두산의 6년차 좌완 허준혁이 신데렐라로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다. 지난 26일 광주에서 열린 KIA와의 시즌 9차전에 선발등판해 7⅔이닝동안 5개의 탈삼진을 곁들여 단 3피안타 3볼넷 1실점으로 막고 시즌 2승째를 사냥했다. 팀은 허준혁의 완벽투와 활발한 타선에 힘입어 9-1로 대승을 거두고 선두 NC에 1.5경기차를 유지했다.
경기전 김태형 두산 감독은 "김기태 KIA 감독방에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제 점수 줄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는 말을 듣고 얼른 자리를 떴다"면서 웃었다. 앞선 2경기에서 11⅓이닝 무실점 행진을 벌이고 있는 선발투수 허준혁의 호투를 이어가기 바라는 심정이었다.

이날 허준혁이 보여준 투구 내용은 생애 최고의 역투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108개의 볼을 던지면서 KIA 타자들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8회 2사후 브렛 필에게 솔로홈런을 맞았지만 완봉기세까지 보일 정도였다. 2~4회 선두타자를 내보냈지만 변화구를 던져 병살로 요리하는 솜씨도 보였다.
허준혁의 최고 스피드는 136km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구로도 완급조절을 하는 능력을 보였고 커브와 체인지업을 주축으로 삼은 변화구도 타자 앞에서 춤을 추었다. 간간히 슬라이더와 포크까지 던지며 현혹하는 통에 KIA 타자들이 공략에 애를 먹었다.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적극적인 승부도 통했다. 1군 승격후 3경기에서 19이닝 1자책점을 기록해 평균자책점은 0.47에 불과하다.
평범한 2군 선수가 갑자기 1군의 주연으로 출세했다. 절대적인 이유는 제구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19이닝 동안 5개에 불과했다. 이날 볼넷 3개를 내줬지만 스트라이크존에서 턱없이 벗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볼 유인구로 상대의 방망이를 끌어내는 기술력이 뛰어났다. 제구력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빚어낸 결과였다. 
허준혁은 제구력에 대해 "원래 내가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스프링캠프에서 투구폼을 바꾸었다. 킥 동작을 와일드하게 바꾸면서 타이밍을 뺏었다. 투구시 팔의 각도를 내렸다. 스피드는 줄었지만 제구력이 좋아지는 효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스피드를 줄이면서 제구력을 잡고 타이밍을 뺏는 투구법으로 바꾼 것이 주효했다. 전지훈련과 2군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땀을 흘렸을 것이다.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구종의 다양화였다. 허준혁에 따르면 예전에는 커브, 체인지업, 포크 가운데 그날 경기에서 잘 듣는 구종만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슬라이더까지 4개의 변화구를 섞어던졌다는 것이다. 구종의 다양화는 상대타자들과 수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효과로 드러난다. 물론 제구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의 비결은 유희관과 장원준의 존재였다. 두 투수는 1군에 올라온 허준혁에게는 더 없이 훌륭한 스승이다. 제구력과 변화구, 상대타자와의 수싸움 등 리그 최고의 수준이다. 허준혁은 "(선배들이 던지는 것 처럼) 상상하고 마운드에 오르면 자신감이 생긴다. 선배들에게 많은 말을 들으려고 다가선다.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도움이 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허준혁의 역투 행진이 계속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요주의 투수로 떠오른 만큼 상대의 세밀한 분석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3경기에서 보여준 반전의 호투는 쉽게 당하지 않을 것 같다는 희망도 동시에 낳고 있다. 니퍼트의 이탈로 시름에 잠겼던 두산의 마운드는 오히려 높아졌다. 김태형 감독은 "니퍼트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선발로 기용하겠다"며 신임장을 주었다. 신데렐라의 화려한 등장이 두산을 춤추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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