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 권혁의 사과, 한화 상처를 지우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6.28 05: 30

“내가 미스를 했다”
끝내기 홈런을 맞은 투수의 심정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스스로에 대한 화, 그리고 팀의 승리를 날렸다는 자책감이 뒤범벅돼 동료들을 볼 면목도 없다. 그런 투수를 바라보는 포수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리드를 잘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분위기는 당연히 처진다. 한 선수는 "인생 최악의 순간 중 하나"라고 표현할 정도다.
하지만 그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분위기는 금방 끊어질 수도,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권혁(32, 한화)의 대처는 모범답안이었다. 그리고 달라진 한화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권혁은 2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은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6-6으로 맞선 8회 마운드에 오른 권혁은 위력적인 구위로 아웃카운트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9회 2사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다. 빠른 공은 경기 후 영웅이 된 박진만도 인정할 정도로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김강민에게 볼넷을 내주며 주자가 나갔고 결국 박진만에게 던진 141㎞짜리 빠른 공이 다소 높게 몰리며 끝내기 좌월 투런을 허용했다.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본 권혁은 스스로에게 화를 냈다. 3-6으로 뒤지던 8회 팀이 3점을 추가하며 분위기를 가져온 상황, 더군다나 이닝종료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둔 상황에서 아차 하는 순간 끝내기포를 맞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4번째 끝내기 패배, SK를 상대로 두 번째 맛보는 실패이기도 했다.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웠던 권혁은 모자를 집어 던지며 한동안 마운드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1루수 김태균이 모자를 주어 권혁을 달랠 뿐이었다.
그런 권혁을 보는 포수 허도환의 심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기 힘든 상황. 그러나 권혁은 나쁜 기억을 빨리 잊었다. 그리고 먼저 마음을 열었다. 쓸쓸히 덕아웃으로 향하는 허도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을 건넸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권혁은 “내가 미스를 했다”라며 허도환에게 미안함을 드러냈다. 리드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자신이 실투를 했다는 의미였다. 이심전심일까. 허도환도 그런 권혁을 보며 말없이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베테랑 조인성이 이런 두 선수를 또 다독였다.
한화는 최근 몇 년간 최하위권에 처져 있었던 팀이었다. 분위기가 밝을 수는 없었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는 비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대개 이런 팀은 패배에 대한 충격이 무디거나, 혹은 급격하게 분위기가 무너진다. 잘못하면 ‘남 탓’을 하는 최악의 일도 생긴다. 하지만 올해 한화는 승리를 통해 그런 패배의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충격에 대한 회복도 빠르다. 권혁의 마지막 발걸음은 그런 달라진 한화를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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