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반전 드라마’ LG, 선명해지는 청사진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5.06.28 05: 59

LG 트윈스 야구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나오고 있다. 젊은 선수들이 대거 대타로 등장, 순식간에 리그 1위 팀 마운드를 무너뜨리는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2, 3년 후 청사진은 뚜렷해졌다.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2015시즌이 되려고 한다.
LG는 지난 27일 잠실 NC전에서 올 시즌 가장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7회초 불펜진이 흔들리며 4-5로 역전 당할 때만 해도 전날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7회말 대타 나성용의 좌전안타를 시작으로 청춘 드라마가 시작됐다. 대타 채은성이 NC 김진성을 상대로 중전안타, 정성훈이 볼넷을 골라 1사 만루가 됐다.
천금의 찬스. 이전 타석에서 3점 홈런을 터뜨린 히메네스가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오지환이었다. 오지환은 2사 만루서 김진성의 3구 패스트볼에 2타점 중전 적시타를 작렬, 6-5 역전을 이끌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계속된 2사 2, 3루 찬스서 양상문 감독은 대타 양석환 카드를 펼쳤다. 그러자 NC 덕아웃은 투수 민성기에게 고의4구를 지시, 만루에서 이민재를 상대하기로 했다. 올 시즌 1군 무대서 안타 48개를 기록한 양석환보다 안타 5개를 친 이민재를 잡을 확률을 더 높게 본 것이다. 하지만 이민재는 NC의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민성기를 상대로 2타점 좌전안타를 날려 8-5, 승기를 LG 쪽으로 가져왔다.
경기 후 결승타를 기록한 오지환은 7회초 역전을 당하고 7회말 공격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에 대해 “어제도 역전당해서 지고 오늘도 리드를 빼앗겼었다. 하지만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괜찮다’고 덕아웃에서 격려해주셨다. 그래서 젊은 선수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결정적 순간 힘을 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양상문 감독은 역전승에 성공한 후 “강한 상대를 만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승을 만들어낸 우리 선수들을 칭찬하고 싶다”며 승리의 주역이 된 선수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사실 양상문 감독의 젊은 선수들 육성 프로젝트는 지난해 5월 부임 직후부터 시작됐다. 2014년 5월 13일 LG 사령탑 데뷔전을 치른 양 감독은 당시 해설위원을 했던 차명석 코치 영입에 들어갔다. 차명석 코치는 약 10년 동안 LG 2군 선수들을 지도했고, 2012시즌과 2013시즌에는 1군 투수코치로 LG 마운드를 굳건히 세웠다. 누구보다 어린 선수들을 잘 알고, 선수들과 가깝게 지냈던 이가 바로 차 코치였다. 2014년 여름이 지나기 전 차 코치는 양 감독의 설득에 의해 LG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었고, 양 감독은 차 코치를 2015시즌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차 코치가 LG로 돌아와서 맡은 첫 번째 임무는 2014년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 총괄이었다. 차 코치는 현재 1군 엔트리에 올라있는 문선재 채은성 유강남 박지규 서상우 최동환 김지용 등을 데리고 10월 5일부터 10월 29일까지 교육리그에 나섰다. 1군이 NC와 준플레이오프 시리즈서 승리하자, 교육리그서 날카로운 타격감을 자랑한 채은성이 넥센과 플레이오프 시리즈에 투입되기도 했다.
육성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졌다. 10월 31일 LG의 2014시즌은 막을 내렸지만, 차 코치는 신예 선수들과 함께 11월 4일부터 28일까지 일본 고치 마무리캠프에 나섰다. 명단은 교육리그와 대동소이했는데 포스트시즌서 깜짝 활약을 펼친 김용의를 외야수로 전향시키기 위해 넣었다. 
이미 투수코치로 능력을 증명한 차 코치를 수석코치 자리에 앉힌 것에 의문을 표한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양 감독은 차 코치와 선수들의 관계를 잘 알 고 있었다. 투수코치 시절 차 코치는 LG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든 투수들의 생일을 핸드폰에 입력, 생일마다 책을 선물하곤 했다. 선수와 사적인 식사를 가장 많이 하는 지도자 역시 차 코치였다. 단기간 강훈련을 통해 어린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에 있어 차 코치보다 적임자는 없었다.
차 코치는 “아무래도 코치와 선수 사이다 보니 갑자기 단 둘이 식사를 하면, 선수들은 말도 거의 안 하고 어색해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또 식사자리를 잡았다. 두세 번 단 둘이 밥을 먹다보면, 선수가 먼저 야구에 대한 고민은 물론, 인생 전반적인 고민도 털어놓더라. 코치와 선수 관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소통이다.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일방적인 관계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 감독과 차 코치는 2015시즌 중에도 꾸준히 이천에 있는 어린 선수들의 동향을 살피곤 한다. 잠실 홈경기가 있을 때면, 짧은 시간이라도 이천에 가서 선수들의 훈련과 경기 모습을 지켜본다. 차 코치는 2군 코치들에게 정형화된 문서로 보고를 받기 보다는, 이천 코치들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2군 선수들의 상태를 듣는다.
2015년 5월 22일. LG는 사직 롯데전에 앞서 반강제로 20대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1군 엔트리를 짜게 됐다. 전날 경기서 정성훈이 발목, 손주인이 손등을 다치며 엔트리서 제외, 나성용과 이민재가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날 경기서 나성용은 7번 지명타자로, 이민재는 9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다. 나성용의 경우, 상무와 퓨처스리그 경기 중 콜업 통보를 받을 정도로 긴급히 사직구장에 도착했다. 20대 젊은 선수들의 반전 드라마 1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 경기서 LG는 나성용의 만루홈런을 포함 21안타 20득점으로 롯데에 20-12 대승을 거뒀다. 오지환이 4안타, 양석환이 3안타, 나성용이 홈런포함 2안타, 문선재는 2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롯데 1군 정예 선수들을 압도했다. 이틀 후 설상가상으로 이진영까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 팀의 중심을 잡던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갔지만, LG는 버티고 있다. 5월 22일부터 6월 27일까지 31경기에서 15승 16패, 5할 승률 근처를 맴도는 중이다.
물론 이 성적이 젊은 선수들의 활약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류제국과 우규민이 합류하며 선발진이 안정됐고, 박용택과 정성훈은 여전히 팀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해결사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오지환은 어느 덧 리그 최정상급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가 됐고, 유강남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최경철의 공백을 메웠다는 점이다. 양석환은 매 경기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있고, 나성용은 적은 기회 속에서도 존재감을 뽐낸다. 채은성은 지난해 1군 무대서 한 달 동안 보여준 맹타가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는 중이고, 문선재는 고전했던 2014시즌을 뒤로 한 채 전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20대 모두가 당장 1군 중심선수라고 할 수는 없다. 오지환을 제외하면 다들 수비부터 몇 단계 향상되어야 한다. 때문에 양상문 감독은 현재 올 가을부터 열리는 교육리그와 마무리캠프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양 감독은 27일 경기에 앞서 “올해도 가을부터 미야자키서 교육리그, 고치에서 마무리캠프를 열 생각이다. 젊은 선수들 대부분이 수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교육리그와 마무리캠프를 경험한 신인 내야수 박지규는 “개인적으로 수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수비 연습만 죽어라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수비는 1군에서도 자신 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2015시즌 개막 당시만 해도, LG에 있어 ‘리빌딩’ 혹은 ‘세대교체’란 단어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그만큼 중심선수들을 대체할 선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15시즌의 반환점을 돈 지금 시점에서는 짧게는 2, 3년, 길게는 4, 5년 후 LG의 주축이 될 선수들이 하나 둘씩 그려진다.
KBO리그에서 가장 이상적인 리빌딩은 승리가 동반된 리빌딩이다. LG 역시 올 시즌 승리를 놓지 않았다. 올스타브레이크까지 16경기가 남은 가운데 9승 7패로 승패마진 ‘-5’를 만드는 게 첫 번째 목표다. 목표달성과 반전 드라마 재방송을 위해, LG 20대 젊은 선수들은 꾸준히 그라운드를 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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