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하지만 가뜩이나 전력이 약한 한국농구는 누군지도 모를 미지의 상대와 맞서 싸워야 할 처지다.
제 28회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오는 3일 광주에서 개막한다. 이민현 감독이 이끄는 유니버시아드 남자농구 대표팀(이하 U대표팀)도 출전한다. U대표팀은 3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개최된 ‘KCC와 함께 하는 2015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에서 4연승으로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2차 연장전까지 가서 96-91로 이긴 장신군단 러시아 U대표와의 결승전은 U대회를 앞두고 좋은 실전경험이 됐다. 이제 U대표팀은 2일 광주로 향한다.
이민현 감독은 “이번 대회는 우승이 아니다. 러시아를 이겨서 대서특필을 바라지 않는다. 차라리 연장전을 한 번 더 갔으면 했다. 러시아와 했다는 것이 기분 좋다. 좋은 대회가 됐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U대회 남자농구는 24개국이 4개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다. 여기서 최소 조 2위를 차지해야 8개국이 겨루는 토너먼트로 진출할 수 있다. 한국은 모잠비크, 앙골라, 중국, 독일, 에스토니아와 한 조다. 최소 3승을 해야 상위리그 진출희망이 있다. 높이가 낮은 한국에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한국은 상대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어떤 선수가 잘하는지, 감독이 어떤 전술을 즐겨 쓰는지, 적에 대한 분석이 전혀 돼있지 않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대회 당일에 직접 상대와 부딪쳐볼 생각이다.
이민현 감독은 “‘모잠비크와 앙골라는 아프리카에 있구나’ 하고 구분하는 정도다. 전력분석원이 따로 없다. U대회가 준올림픽이지만 사실 상대 전력에 대해 서로 모른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감독은 “중국은 너무 잘 안다. 초반 3경기를 하고 하루 쉰다. 그 다음 경기는 독일과 에스토니아다. 두 팀은 셀 것 같다. 모잠비크, 앙골라, 중국전까지 최소 2승을 해야 한다. 5팀 중 그나마 세 팀이 약체”라고 평했다.
서로 다른 소속팀에서 모인 U대표팀은 짧은 시간에 선수들 호흡 맞추기도 바쁘다. 코칭스태프들은 상대 전력분석까지 할 여유가 없다. 빠듯한 예산에 선수들 먹이고 재우기도 버겁다. 전문 전력분석원은 별나라 이야기다.
이민현 감독은 “상대 비디오는 보지 못했다. U대표팀이지만 전력분석원이 없다. 모여서 집체훈련하기도 바쁘다. 그나마 예전 U대회 때는 태릉에서 3-4개월 집체훈련을 했는데 지금은 겨우 3주 전에 (선수들과) 만났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해 남자농구대표팀은 아시안게임서 12년 만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유재학 감독 예하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이 다함께 노력한 결과다. 그 뒤에는 사상 처음 도입된 국가대표 전력분석원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한국은 2014 스페인 농구월드컵 첫 경기서 앙골라에게 69-80으로 패했다. 20점까지 뒤졌던 한국은 후반전 맹추격을 펼쳤지만 졌다. 양동근은 “막상 부딪쳐보니 앙골라가 생각보다 훨씬 잘했다.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고 고백했다. 전문 전력분석원의 도움으로 상대를 어느 정도 알고 갔지만, 화면과 실제의 상대는 너무 달랐다. 국가대표 베테랑조차 국제대회서 당황을 했다. 하물며 아무것도 모르고 싸워야 하는 대학생 선수들은 오죽할까.

올해 성인대표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자원하는 사람이 없어 김동광 감독이 떠안다시피 3개월 단기로 지휘봉을 잡았다. 전력분석원도 없고 해외전지훈련도 없다. 대만 존스컵 출전으로 전지훈련을 대체할 계획이다. 한국농구는 정확하게 2009년 아시아 7위에 그쳤던 ‘텐진 참사’ 시절로 되돌아간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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