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보다 술래잡기 또는 펜싱에 가까운 모습이다. 채점에 전자호구를 도입한 최근 태권도 겨루기의 경기모습이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심판판정에 대한 잡음을 없애고자 2년 전 전자호구를 도입했다. 몸통과 헤드기어에 부착된 센서에 충격이 가해지면 자동으로 점수가 계산되는 방식이다. 얼굴 3점, 몸통 1점, 뒤돌려 차기 등 회전에 의한 공격은 1점으로 채점한다. 주먹공격의 경우 심판들이 득점을 했다는 버튼을 눌러야 인정된다.
전자호구가 도입되면서 태권도 겨루기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상대를 세게 때려 충격을 입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상대가 가격하더라도 빗겨 맞으면 점수는 올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요리조리 피하며 상대호구를 ‘콕’ 찍으면 점수가 올라간다. 이 때문에 양 선수가 서로 외발로 서서 눈치를 보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속출하고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서 문대성이 화끈한 돌려차기로 상대에게 극적인 K.O. 승을 거둔 장면은 전설로만 이어질 뿐이다.

최근 종합격투기가 대중화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은 여전히 태권도의 화려한 발차기에 이은 화끈한 타격공방을 기대하고 있다. 눈치 보며 상대를 ‘터치’하는 달라진 태권도 경기에 팬들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반응이다. 이제 태권도는 격투기라기보다 술래잡기나 펜싱에 가까운 모습이다.
상대를 신나게 두들겨 팼지만, 점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결승전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노출됐다. 한국대표 류대한(21, 경희대)은 9일 조선대체육관에서 개최된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 태권도 겨루기 남자 -68kg급 결승전에서 아쿌 버카이(19, 터키)에게 1-3으로 역전패를 당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류대한은 1라운드서 옆차기로 상대 몸통을 제대로 강타했지만 득점이 올라가지 않았다. 두 류대한은 2라운드에서도 버카이의 얼굴을 발차기로 때렸지만 역시 득점에는 실패했다. 우세한 경기를 펼치던 류대한은 버카이가 경고를 받아 1점을 선취했다.
3라운드서 류대한은 버카이와 발차기를 주고받으며 난타전을 펼쳤다. 류대한은 막판 공세를 펼치다 상대의 어설픈 발차기에 얼굴을 살짝 얻어맞았다. 타격의 강도는 살짝 스치는 정도였지만 컴퓨터가 3점을 선언했다. 남은 시간 5초 동안 류대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통한의 결승득점을 허용한 류대한은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하고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그가 차라리 1점을 지키려 도망을 다니는 소극적 경기운영을 했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것이다.
경기 후 류대한은 “경기 전에 테스트를 했는데 세게 차니까 오히려 점수가 안 나오더라. 주먹의 경우 심판이 눌러줘야 득점이 인정되는데 안 눌러줘서 더 주먹으로 하려고 했다. 마지막 발은 정말 맞지 않았다. 조금 스쳐서 항의를 하려고 했는데 비디오 판독을 신청할 수 있는 카드를 이미 소진한 상태였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의 공인을 받은 전자호구는 두 개사의 제품이 있다. 스페인 기반의 ‘대도’와 한국에서 주로 쓰는 ‘KP&P’다. 유럽에서 많이 쓰는 대도는 조금만 스쳐도 점수가 올라간다. 반면 KP&P는 화려한 발차기를 유도하기 위해 때려도 쉽게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전자호구가 통일되지 않으면서 국제대회서 선수들이 큰 혼선을 겪고 있다.
전자호구는 심판의 판정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운 순기능이 있다. 다만 이로 인해 태권도 본래의 매력인 시원한 발차기를 볼 수 없게 됐다. 태권도의 흥행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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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