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조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코칭스태프, 혹은 프런트라고 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들이 조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매주 1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이야기를 OSEN이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1회초, 선발투수 투구를 시작한다. 야구가 시작됐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는 전력분석원들의 일상에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수들의 투구 하나, 그리고 타자와 야수들의 몸놀림 하나도 놓칠 수 없다. 말 그대로 공 하나에 오감을 쏟는다.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도 허투루 놓칠 수 없는 긴장의 순간. 전력분석원들은 그 하나를 잡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모든 팀들이 전력분석원들을 두고 있고 최근에는 그 전력분석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그 전력분석된 데이터를 통계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고, 그 기록이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실마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최일선에서 진행하는 이들이 바로 전력분석원이다. 포수 뒷면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발산하는 이들의 손에서 경기 결과가 좌우될 때도 적지 않다.

한승진 SK 매니저도 그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전력분석원들은 가장 먼저 현장에 나가 가장 나중에 현장을 떠나는 이들이다. 3연전 첫 날에는 오전 9시 이전에 출근을 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에게 제시할 자료를 미리 뽑는다. 길고, 장황한 설명은 금물이다. 1경기 영상만 해도 긴 경기의 경우는 13GB에 이른다. 이런 영상들의 핵심만 추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당연히 경기를 보는 눈도 있어야 하고, 감도 필요하다.
한 매니저는 “물론 모든 경기를 다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최근 6경기를 본다. 그 6경기에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현상 속에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추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야근도 잦고, 초과근무도 잦다. 한 매니저는 “1경기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음 경기를 대비하기 위해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그리고 내일 경기에서 찾아내야 할 것을 신경 쓰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라고 이야기한다.
선수들에게 핵심을 뽑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시간 싸움이다. 한 매니저는 “선수들에게 모호한 접근은 안 된다. 확실한 팩트를 전해주고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가장 힘든 작업이다. 아무리 좋은 자료가 있어도 선수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끝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데이터는 물론 시청각 자료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한 매니저는 “시간 싸움이 가장 힘들다. 현장에서 총 7명이 움직이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마치 자신의 탓인 것 같아 괴롭다는 것이 전력분석원들의 이야기다. 한 매니저도 “어차피 승부는 결과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기대만큼 안 될 때도 있고, 혹은 방향이 잘못됐는데 오히려 잘 될 때도 있다. 그게 야구”라면서 “설사 경기에서 지더라도 흐름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이야기한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당연히 전력분석이 이뤄진 대로 경기가 풀려나갈 때다. 이는 전력분석팀과 선수들이 한 몸이 될 때 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자료라도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이 직접 이를 구현하지 못할 경우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한 매니저는 “선수들이 우리가 준 자료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선수들에게 참 고맙다”라고 살며시 웃었다.
올해부터는 방식도 바꿔가고 있다. 기존 방식이 일방적인 ‘주입식’이었다면 지금은 ‘소통형’으로 점차 이행 중이다. 이를 위해 테이블 구조까지 바꾸는 등 선수들이 모를 배려도 꼼꼼하다. 한 매니저는 “가끔 선수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 잘 받아준다. 선수들이 잘할 때는 우리도 힘을 얻는 것이 아닌가”라며 다시 스피드건을 집어 들었다. 공 하나에 모든 신경을 다 기울이는 이들은, 공 하나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다 그런 평범한 진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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