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통산 363승을 올리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워렌 스판은 오늘날의 투수들에게도 좋은 스승이다. 그가 남긴 말은 지금도 많은 투수들에게 가르침이 되고 있다.
스판이 남긴 진리는 '타격은 타이밍, 피칭은 타이밍 빼앗기(Batting is timing, pitching is upsetting timing)'라는 것이다.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타이밍 싸움을 통해 3년째 승승장구하고 있는 유희관(29, 두산 베어스)은 스판의 명언을 증명하는 좋은 예다.
유희관은 지난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kt wiz와의 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7이닝 5피안타 1탈삼진 1볼넷 무실점 호투했다. 팀의 11-0 완승 속에 시즌 12승(2패)째를 거둔 유희관은 다승 부문 단독 선두로 전반기를 마감하게 됐다. 승률(.857)도 리그에서 제일 높고, 소화한 이닝(120⅔)도 국내 투수들 중에는 최다다.

전날 경기에서 유희관은 7이닝을 던지고 투구 수가 94개로 채 100개가 되지 않았음에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에 대해서는 "체력도 조금 떨어지고 후반기도 준비해야 했다. 박빙이었으면 더 던졌을지도 모르는데 타자들이 점수를 많이 뽑아줘 운이 좋은 것 같다"고 간단히 말했다. 올스타전에서도 던저야 하기 때문에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는 100개를 넘기지 않는 것이 후반기를 위해서도 좋았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이목을 끈 것은 더 느려진 유희관의 피칭이었다. 이날 유희관의 최고 구속은 131km로 평소보다 더 느렸다. 경기 중에도 주자가 없을 때는 120km대 중~후반의 느린 포심 패스트볼이 많았다. 컨디션이 나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조금은 의식적인 부분도 있었다.
유희관은 경기 후 "주자가 없기도 했고, 여름이 되어 체력도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서 더 느리게 던졌다. 원래 느린 공을 더 느리게 던져서 타이밍을 안 맞게 할 수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말에 의하면 유희관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대략 세 단계로 구분된다. 간단히 말해 전력으로 던질 수 있는 공과 그보다 조금 느린 공, 그리고 좀 더 느린 공이 있는 것이다.
그는 더 느리게 던져 kt 타자들의 타이밍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지쳤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힘을 쓸 수도 있지만 유희관은 반대로 힘을 빼고 평소보다 더 느리게 던졌다. 역발상을 통해 오히려 '타이밍'이라는 키워드의 핵심을 관통하게 하는 선택이었다.
유희관은 평소 "포수의 사인대로 던진다"고 말한다. 구종은 포수의 사인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다. 하지만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공의 종류만 결정할 수 있다. 그 공을 '어떻게' 던질지는 투수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에측할 수 없는 타이밍을 만들어 타자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유희관은 강속구를 가진 '파이어볼러'보다 빛나는 '스마트볼러'다. 스마트볼러는 모든 파이어볼러들을 제치고 올해 전반기에 가장 많은 승리를 따냈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