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피츠버그가 부상이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 자칫 잘못하면 해적선이 큰 타격을 받을 판이다. 결국 이 암초를 피해가기 위해서는 강정호(28, 피츠버그)라는 유능한 사공이 필요하다. 이제 피츠버그 해적선은 강정호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만큼 팀 내 입지도 커졌다.
세인트루이스에 이어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2위를 달리고 있는 피츠버그는 후반기 첫 3연전이었던 밀워키 원정에서 스윕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여기에 큰 악재도 맞이했다. 바로 주전 유격수인 조디 머서의 부상이다. 머서는 20일(이하 한국시간) 2회 수비 당시 1루 주자였던 카를로스 고메스와 부딪혀 왼 다리 부상을 당했다. 정밀 검진 결과 왼 다리는 물론 무릎 인대에도 손상이 발견돼 적어도 6주 정도는 경기에 나서지 못할 전망이다.
머서는 팀의 붙박이 유격수였다. 클린트 허들 감독의 믿음이 굳건했던 포지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즌 초반 타율이 1할대에 허덕였을 때도 주전 유격수는 머서의 몫이었다. 수비 때문이었다. 머서는 피츠버그 내야에서 가장 좋은 수비력을 보유한 선수이며, 전체 유격수 판도에서도 평균 이상의 수비력이 검증됐다. 가뜩이나 내야 시프트를 많이 사용하는 피츠버그에서는 수비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이런 머서를 9월 초까지 잃을 위기다.

피츠버그가 전반기 순항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결정적인 하나는 팀 내 부상자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거의 베스트 멤버로 한 시즌을 꾸려왔다. 그러나 전반기 막판 주전 3루수이자 외야 백업, 그리고 리드오프 몫까지 맡을 수 있는 조시 해리슨이 왼손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믿을 만한 수비수인 머서도 다쳤다. 내야의 왼쪽이 텅 비었다. 이제 피츠버그는 강정호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강정호에 포스팅 금액 포함 4년 2000만 달러를 투자한 피츠버그다.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주전 선수들의 휴식 시간을 보장할 만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강정호를 선택했던 피츠버그는 현재까지 투자 이상의 가치를 맛보고 있다. 강정호는 20일까지 75경기에서 타율 2할7푼5리, OPS(출루율+장타율) 0.755, 5홈런, 30타점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무난한, 아니 연봉과 첫 시즌임을 고려하면 훌륭한 성과다.
여기에 해리슨과 머서가 줄부상을 당함에 따라 강정호가 팀 내 내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유격수와 3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강정호이기 때문이다. 강정호는 올 시즌 3루수로 40경기, 유격수로 16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수비적인 측면 때문에 주로 3루수로 많이 나섰지만 강정호의 주 포지션은 어디까지나 유격수다. 당분간은 어느 쪽이든 주전이 보장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일단 급한 불인 유격수 자리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한편 머서의 부상 정도를 확인한 뒤 피츠버그는 분주하게 트레이드 시장을 누빌 것으로 예상된다. 강정호가 두 포지션 중 하나를 책임진다고 해도 나머지 하나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장 벤 조브리스트 등 몇몇 선수들의 이름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트레이드 카드가 그렇게 쉽게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당분간은 강정호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어쩌면 강정호가 피츠버그의 생사를 쥔 모양새다. 돌려 말하면 그만큼 강정호의 첫 시즌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