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야 수비의 핵심인 유격수는 보통 공격보다는 수비가 우선시되는 포지션이다. 수비력만 뛰어나다면 2할5푼 이하의 타율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에 공격까지 플러스가 되면 그야말로 부르는 것이 값이다. 이런 유격수가 중심타선에 포함되는 일은 흔한 것이 아닌데, 강정호(28, 피츠버그)가 그 드문 사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강정호는 최근 피츠버그 내야에서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벤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좋은 적응세를 보여 벤치의 믿음을 샀다. 여기서 팀의 주전 3루수인 조시 해리슨, 그리고 주전 유격수인 조디 머서가 연달아 부상을 당했다. 강정호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해리슨은 빨라도 8월 말, 머서는 9월 초에 복귀가 가능하다. 강정호 없는 피츠버그의 내야는 상상할 수 없는 셈이다.
한참 3루수를 봤던 강정호다. 유격수가 본 포지션이라고 해도 다시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2경기에서 나온 1~2차례 아쉬운 수비는 갈수록 보기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메이저리그(MLB) 정상급 수비를 바라는 것이 아닌 만큼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공만 차분하게 처리하고 수비 시프트를 능수능란하게 수행하는 것만으로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강정호는 팀 내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강정호는 21일까지 76경기에서 타율 2할7푼8리, 출루율 3할6푼1리, 장타율 4할5리, 5홈런, 30타점을 기록 중이다. 서서히 규정타석을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 표본이 적다고도 할 수 없다. 첫 해임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성적이다. 또한 중앙 내야수(유격수, 2루수)치고는 평균 이상의 성적이다. 유격수라면 더 가치가 크다. 올해 MLB에서 유격수 포지션으로 분류된 선수들의 평균 타율은 2할5푼2리다. 강정호는 타율, 출루율, 장타율 모두에서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만약 강정호가 유격수로 꾸준히 뛰며 이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면 MLB에서도 공격 지표는 정상급이다. 21일 현재 강정호(0.766) 이상의 OPS(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한 선수는 단 3명뿐이다. 리그 대표 유격수인 트로이 툴로위츠키(콜로라도, 0.866), 조니 페랄타(세인트루이스, 0.837), 브랜든 크로포드(샌프란시스코, 0.785)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중심타선에 들어서는 유격수는 흔치 않다. MLB의 기준에 유격수로 분류된 선수 중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총 23명이다. 여기서 올 시즌 중심타선(3~5번)에서 1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툴로위츠키와 페랄타를 비롯, 산더 보가츠(보스턴), 에릭 아이바(LA 에인절스), 아데이니 에체바리아(마이애미), 윌머 플로레스(뉴욕 메츠), 스탈링 카스트로(시카고 컵스) 정도다. 열 손가락 안에 손꼽는다. 강정호는 올해 3번에서 4타석, 4번에서 52타석, 5번에서 103타석을 소화했다.
물론 각 팀의 사정이 있고 최근에는 전통적인 타순의 개념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감독들도 있다. 피츠버그도 전형적인 4번 타자는 없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중심타선에 위치하는 유격수는 보기 드문 만큼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좋은 활약에 따라 강정호의 타순은 당분간 5번에 고정될 것으로 보인다. 수비가 어느 정도 받쳐준다는 가정 하에, 공격이 되는 유격수는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어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