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에 있을 선수가 아닌데, 1군에 있는 거죠”
지난 5월 중순. 김성현(28, SK)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자조 섞인 말투로 이렇게 이야기했디. SK의 주전 유격수로 낙점된 김성현은 한창 수비 실책을 연발하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은 안타까움이었다. 분명 수비를 잘 하는 선수, 그런 플레이를 할 선수가 아닌데 심리적으로 흔들리며 처리할 수 있는 타구도 실책을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타구는 잘 잡는 반면, 쉬운 타구를 놓치는 모습은 문제가 기술적인 측면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었다.
팀 내 최고참이자 수비의 달인인 박진만은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분명 수비를 잘하는 선수다. 다만 심리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그 고비를 이겨내야 한다”며 안타까운 눈으로 후배를 쳐다봤다. 벤치도 당근과 채찍을 가하며 김성현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한 번 흔들린 무게중심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결국 2군행. SK의 시즌 초반 구상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야구계에서는 “착한 사람은 결코 1등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불편한 현실이지만,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말로 통용되곤 한다. 때로는 실책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낯짝 두꺼운 뻔뻔함도 필요하다. 하지만 ‘착한’ 김성현에게는 그런 뻔뻔함이 없었다. 속출하는 실책에 대해 자책이 너무 심했다. 김용희 감독이 나주환이나 김재현과 같이 팀 내에서 가장 밝은 선수를 거론하며 김성현의 성격이 좀 더 밝아지길 바랄 정도였다.
어쩌면 속상할 수도 있는 2군행이었다. 1군에 다시 올라온다는 기약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 2군행이 김성현에게는 좋은 계기가 됐다.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군에 있을 때는 시간 제약상 마음껏 하지 못했던 특별 수비 훈련도 자청했다. 자책감을 날려버리는 데는 땀만한 것이 없었다. 결국 수비에 안정을 찾았다는 보고가 들어갔고 김용희 감독도 김성현을 다시 1군에 불러 올렸다. 그리고 김성현은 그 믿음에 보답하고 있다.
타격 성적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김성현의 수비는 확실히 안정세다. 김성현은 첫 56경기에서 무려 16개의 실책을 범했다. 그러나 1군에 복귀한 뒤 가진 17경기에서는 실책이 하나도 없다. 유격수는 예나 지금이나 공격보다는 수비가 중요한 포지션임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한창 좋을 때의 몸놀림으로 돌아오고 있다. 얼굴 표정도 밝아졌다. 말수도 부쩍 늘었다.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배들도 그런 김성현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중이다. "그런 마음가짐이면 된다"라는 암묵적인 신뢰다.
김성현은 팀을 대표하는 ‘하이라이트 필름’이다. 우선 좌우 수비 폭이 넓다. 여기에 키는 작지만 연결동작의 속도 자체는 리그 최고로 손꼽힌다. 어깨도 강하다. 화려한 수비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런 김성현은 최근 잡을 수 있는 타구는 모두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조급한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다.
21일 인천 두산전에서도 까다로운 타구를 모두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선발투수인 크리스 세든을 도왔다. 어려운 병살 플레이를 간결한 연결동작으로 이어가는 응용 동작은 김성현이기에 가능하다라는 말도 나왔다. 공격에서도 결정적인 한 방으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2-0으로 앞선 2회 두산 선발 스와잭의 슬라이더를 잡아 당겨 좌측 담장을 넘기는 3점포를 터뜨렸다. 공·수 양면에서의 맹활약이었다.
김성현은 최근 수비 안정세에 대해 겸손해한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김성현은 지난해에도 5월까지 수비 불안에 흔들리다 6월 이후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도 그런 패턴을 기대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몸이 아닌 마음이 여유가 생겼다. 김성현은 수비 실책이 없다는 이야기에 “그렇다면 한 번 나올 때가 된거죠”라고 살며시 웃는다. 웃음의 의미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그 실책에 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보였다. SK 내야는 수렁에서 빠져 나온 김성현의 미소와 함께 더 강해지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