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마크 벌리’ 장원준은 묵묵히 걸어간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7.23 06: 01

마크 벌리(36, 토론토)는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을 단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 근처에 가본 기억도 그다지 많지 않다. 2000년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한 이래 그가 최고 대열에 이름을 올린 적은 없었다. 항상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웬만한 팬들도 벌리의 이름은 안다. 워낙 꾸준히 오랜 기간 활약했기 때문이다.
벌리는 지난 7월 12일 최근 메이저리그(MLB) 무대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1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의 대업을 달성했다. 단 한 번도 최고 투수라는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벌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MLB에서도 고작 26명밖에 없는 ‘15시즌 이상 두 자릿수 승수’ 클럽에 가입했다. 당대 최고로 불렸던 랜디 존슨이나 톰 글래빈도 문턱에서 좌절한 영광의 자리다. 빠른 발을 가진 토끼는 아니었지만 거북이처럼 묵묵하게 산을 기어오른 셈이다.
MLB에 벌리가 있다면, KBO 리그에는 장원준이 있다. 장원준은 2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이로써 올 시즌 10번째 승리를 따낸 장원준은 KBO 리그 역사상 6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낸 8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왼손만 놓고 보면 류현진(현 LA 다저스)에 이어 두 번째 대업이다.

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이강철(10회), 정민철(8회), 김시진 선동렬 정민태 리오스 류현진(이상 6회)이다.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대스타였으며 이 중 김시진 선동렬 정민태 리오스 류현진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이 있다. 이강철과 정민철은 10번이나 두 자릿수 승수 고지를 밟은 전설들이다. 이에 비하면, 이렇다 할 타이틀이 없는 장원준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깊은 맛이 있다.
부산고 시절 지역 최대어로 손꼽히며 2004년 롯데의 지명을 받은 장원준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동안 매년 승리보다 패전이 더 많은 투수였다. 4년간 성적은 23승38패였다. 그러나 제구가 어느 정도 잡히기 시작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롯데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로 성장했다. 장원준은 2008년 첫 두 자릿수 승수(12승) 고지를 밟은 이래 올해까지 단 한 번도 이 명예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최고의 투수가 아니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투수였다.
지난해 두산과 맺은 4년 총액 84억 원의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계산이 되는 투수라는 점에서 그의 가치는 높다. 2007년 이래 현재까지 그는 181번의 선발 등판을 가졌다. 송승준(225회) 장원삼(213회) 김광현(188회)에 이어 윤성환(181회)과 함께 공동 4위다. 그리고 80승을 거뒀다. 역시 앞서 언급한 네 선수 다음인 5위다. 그리고 이 기간 중 1062⅓이닝을 던졌는데 이 또한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000이닝 이상을 던진 선수는 총 6명. 송승준(1329이닝), 장원삼(1198이닝), 김광현(1137⅓이닝), 윤성환(1136⅔이닝), 류현진(1067⅓이닝) 다음이다. 3.95의 평균자책점은 송승준 장원삼보다 오히려 좋다. 또한 장원준은 이 중에서 김광현 다음으로 젊다. 이제 막 전성기를 열어젖힐 나이, 그리고 꾸준함과 내구성이 시장에서 먹히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 자신의 한 시즌 최다승(2011년 15승)에 도전하는 장원준은 이 부문 기록의 전설이 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다. 기본적으로 현재 이 기록을 진행 중인 선수가 별로 없다. 류현진은 기록이 깨진 채 미국으로 갔고 더스틴 니퍼트(4시즌 연속) 등 외국인 선수들은 ‘용병’의 특성상 이 기록을 연장하기 어렵다. 토종 현역 2위는 장원삼으로 이제 4시즌에 도전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아직 만 30세로 한창 나이라는 점, 특별한 부상 전력이 없는 건강한 신체 등을 고려하면 장원준 만한 도전자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장원준도 22일 경기 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라면서 현재의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롱런하고픈 욕심을 드러냈다. 꼭 최고만 후대에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지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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