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에게 있어 투구폼은 생명과 같다. 공의 위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모든 선수들의 숙제다. 그런데 고효준(32, SK)은 과감한 변신을 선택했다. 그것도 시즌 중에 모험을 걸었다. 도약을 향한 고효준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SK 불펜의 롱릴리프 자원으로 대기하고 있는 고효준은 올 시즌 20경기에서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6.38을 기록하고 있다. 올 시즌을 벼르며 열심히 땀을 흘렸던 지난겨울의 노력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다.
다만 SK가 선발투수가 조기 강판됐을 때 롱릴리프를 투입시키는 패턴을 철저하게 지켜가면서 고효준은 등판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컨디션을 관리하기 쉽지 않음은 벤치가 가장 먼저 이해하고 있다. 오히려 몸을 풀다 마는 궂은일을 하는 것에 대해 고마워한다. 등판 기회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고효준이 꾸준히 1군 엔트리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고효준은 2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 5회 등판했다. 이날 SK는 선발 박종훈이 1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다. 채병룡이 가장 먼저 전장에 투입됐으나 두산의 화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타선도 추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지 못해 경기가 일찌감치 넘어가고 있었다. 이에 SK는 ‘출구전략’을 최대한 잘 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측면에서 3이닝을 버텨준 고효준의 몫은 소중했다. 고효준은 이날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불펜 소모를 최소화시켰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고효준의 투구폼이었다. 고효준은 왼손 정통파에 가까운 투수다. 140㎞를 상회하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최대 무기였다. 하지만 이날은 상황마다 투구폼이 달랐다. 팔 각도가 내려와 거의 스리쿼터식으로 공을 던졌다. 상대 타자를 현혹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변칙도 아니었다. 투구폼을, 그것도 시즌 중에 바꾼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고효준은 위력적인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좋은 재능을 갖췄다. 그러나 대신 제구가 들쭉날쭉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항상 제구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빠른 공 투수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넘지 못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올스타 휴식기 기간 중 김상진 투수코치가 “스리쿼터로 던져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라고 권유했다. 투구폼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당연히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효준은 결국 변화를 선택했다.
고효준은 “코치님 권유로 던지게 됐다. 스리쿼터로는 피칭을 딱 1번 했다. 70개 이상의 공을 던지고 오늘 실전에서 한 번 던져봤다”라고 설명했다. 고효준은 이날 바뀐 투구폼에 적응이 덜 됐음에도 불구하고 3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좋은 결과를 냈다. 이에 대해 고효준은 “결과가 좋았을 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음 등판 때도 계속 던져볼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일시적인 이벤트는 아님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효준은 “1군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줬다. 제구를 잡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라고 변화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더 이상 밀리면 이제는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위기의식 속에 절박함이 발동한 것이다. 물론 이 선택이 적중할지는 시간이 이야기해줄 것이다. 다만 고효준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벌이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