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45, 전남 드래곤즈)라는 이름은 K리그 역사를 차지하는 선수 중 한 명이지만, 그 비중 만큼은 어떤 선수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울산 현대 소속으로 K리그에 데뷔한 김병지는 23년여만에 699경기를 기록, 오는 26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출전하면 개인 통산 K리그 700경기를 달성하게 된다. 전인미답의 고지라는 점은 이제 익숙하다. 2006년 402경기 출전을 달성하며 K리그 최다 출장 기록을 경신했으니, 9년 동안 김병지가 뛰는 경기는 모두 K리그 역사의 경신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기록을 위해 억지로 뛴 건 아니다. K리그 현역 최고령이자, 매 경기 K리그 역대 최고령 출전 기록을 갈아치우는 김병지이지만, 나이는 그저 꼬리표에 불과하다. 당장 이번 시즌 K리그 클래식 무실점 경기수에서 7경기를 기록해 권순태(31, 전북 현대)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경기당 실점도 1.05(20경기 21실점)에 불과해 수준급의 젊은 골키퍼 못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 45세의 나이에도 K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병지는 지난 24일 광양에 위치한 전남드래곤즈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700경기가 눈 앞에 보인다. 그것도 정규리그에서만 700경기다. 기록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힘든 것 같다. 23년 동안 매년 30경기 이상을 정규리그만 뛰어야 한다. 경고 누적과 부상 등을 겪으면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는 경기다. 개인적으로 40세가 넘어가면서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20대 때에는 5년을 보고 계획을 세웠지만, 40대 때부터는 1년을 보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보니 데뷔한 뒤 600경기를 달성하는 것보다 600경기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 더 힘들었다. 이제 700경기 출전으로 그 과정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있다면 데뷔 후 600경기까지, 그리고 600경기를 달성한 2012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꼽아달라.
600경기 출전 때까지 기억에 강하게 남는 건 헤딩골을 넣었을 때(1998년 포항 스틸러스와 플레이오프 2차전)다. 일반적인 경기가 아니라 1년 농사를 좌지우지하는 플레이오프 경기였다. 득점 이후의 분위기가 아직까지 생각난다. 당시 내가 '공격하는 골키퍼'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경기였다. 600경기부터 지금까지 돌이켜 보면 1경기를 꼽을 수가 없다. 모든 경기가 힘들었다. 해당 경기에 출전하기 위한 생활, 체중과 체력 관리, 모든 것이 관리의 대상이었다. 다른 선수들보다 관리를 두 배 이상해야 했다. 체력 회복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이 힘들었다
-23년을 선수로 뛰었다. 수 많은 팀들을 상대했다.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팀은 어디인가.
최근에는 전북이다. 전체적인 선수층을 본다면 최근의 전북과 포항이 상대하기 까다롭다. 또한 생애 전체를 보더라도 전북이 가장 까다로운 팀 같다. 2008년 이후 전북은 매우 강해졌다. 2009년부터 선수층도 매우 두터워졌다. 최강희 감독님이 부임하신 후 계속 성장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역대 K리그에서 가장 좋은 스쿼드를 가졌고,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수원 삼성도 좋았지만, 지금의 전북처럼 돋보적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아직 은퇴 결정을 안했다. 그렇다면 700경기는 도착점이 아니라 경유지로 볼 수 있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 숫자상으로는 777경기다. 목표를 단순히 10경기 늘려서 710경기로 설정하는 것은 좀 그렇다. 그냥 행운의 숫자 7를 모아서 777경기로 세워봤다. 그러나 은퇴는 내일도 할 수 있다. 은퇴를 '언제 해야지' 생각은 안한다. 명분만 있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경기력 저하가 명분인 건 아니다. 경기력 저하가 된다면 당연히 은퇴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뛰었다. 축구 선수는 직업일 뿐이다. 가족 부양을 위한 책임감이 더 강하다.
-은퇴 결정은 하지 않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은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을텐데?
축구와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 지도자, 행정가, 에이전트 등을 생각하고 모두 준비하고 있다. 지도자 라이센스는 1급만 남겨두고 있고, 골키퍼 지도자의 경우 A코스까지 끝낸 상황이다. 행정의 경우 지금까지 계속 관심있게 보고 배우고 있다. 에이전트는 내게도 특별하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에이전트가 꼭 필요한가?'라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내가 좀 앞서갔다. 에이전트와 가장 먼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 면에서 전문화된 에이전트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 축구 선수 출신 에이전트는 있었지만,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없었으니 되보고 싶다. /sportsh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