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선수들이 화려한 조명탑 불빛 아래 그라운드를 누빌 때 2군 선수들은 땡볕에서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립니다. "1군에서 선발로 한 번만 뛰어보고 싶다"는 2군 선수들의 꿈과 희망은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내일의 스타를 꿈꾸며 오늘을 살고 있는 2군 유망주들을 OSEN이 한 명씩 소개합니다.
1990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야수 권준헌은 구단이 현대에 인수된 후 1999년까지 338안타로 족적을 남겼다. 이후 강한 어깨를 살려 투수로 전향한 그는 현대 유니콘스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319⅔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3.32로 준수한 피칭을 했다. 타석과 마운드를 오간 덕분에 권준헌은 2008년까지 프로에 몸담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1군에서 야수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권준헌처럼 투수로 소박한 성공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바로 최근 투수로 전업한 오장훈(31, 두산 베어스)이다. 2011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오장훈은 미완의 파워히터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제는 투수로 새 출발을 선언한 상태다. 방망이를 놓은지는 1개월 가까이 됐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오장훈은 "러닝을 많이 해서 살을 많이 뺐다"는 말부터 꺼냈다. 홍익대 시절 투수를 하기도 했던 오장훈에게 다시 투수로 돌아오게 된 사연을 묻자 "한용덕 코치님이 1군에 올라가시기 전에 '투수를 한 번 해보자. 이대로는 아쉽지 않느냐?'고 말씀해주셨다. 나이도 있는데 올해 퓨처스리그에서도 (타자로) 두드러진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깨가 좋으니 투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해주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타자로 긴 시간을 보냈기에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올해 스프링캠프에서도 그는 1루 자리를 놓고 김재환, 오재일, 유민상 등과 경쟁했다. 오장훈은 "사실 많이 아쉬웠다. 스윙을 수만 번 했는데 방망이를 놓기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만류해 일주일 정도는 고민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했을 때 투수도 좋을 것 같았다.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늘 후회 없이 하는 것이 목표였다. 결과가 어떻든 지금은 이쪽으로 온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며 새로운 도전에 더욱 무게를 뒀다.
이제는 실전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피칭 훈련은 다 끝나고, 라이브 배팅 때도 두 번 던졌다. 계획대로라면 조만간 퓨처스리그 경기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학 때는 지금보단 공이 빨랐지만, 다듬어진 것 없이 힘으로만 던지는 스타일이라 제구가 부족했다. 지금은 좀 더 정확히 던지려 한다"는 것이 오장훈의 설명이다.

아직 실전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새 출발을 선언한 그를 돕고 있다. 오장훈은 "이광우 코치님과 가득염 코치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투수를 하게 됐는데, 던지는 것이야 똑같지만 훈련 방법에 대한 조언도 다른 선수들에게 많이 듣고 있다. 마침 (노)경은이가 퓨처스리그에 있어서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절친이다 보니 러닝 하는 것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등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전했다. 성남고 동기인 노경은은 오장훈의 오랜 친구다.
타석에 섰던 시간이 길어 마운드가 어색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타자의 심리를 잘 안다는 것은 향후 장점이 될 부분이다. 오장훈도 "그런 부분에서는 분명 장점이 있을 것 같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변화구에 대처하지 못해 항상 1군 문턱에서 좌절했는데, 투수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빠른 공에는 힘이 있는데, 변화구를 잘 던지는 편이 아니라 보완해야 1군에 올라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냉정히 평가했다.
대신 짧은 이닝이라도 힘 있게 던지겠다는 것이 오장훈의 다짐이다. 그는 "지금은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연습하고 있지만 변화구를 많이 던지는 편은 아니어서 가지고 있는 포심 패스트볼을 더 묵직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타자였을 때와는 근력운동을 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이제는 1kg짜리 아령만 들고, 잔근육을 많이 만드는 운동만 한다. 러닝은 1시간씩 하며 체지방을 줄이고 순발력도 키우는 중이다. 선발보다는 불펜에서 던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오장훈은 대학 시절 토미존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앞으로 가장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장훈은 올해 우리나이로 서른 둘인 투수다. 남은 선수 생활이 길지만은 않은 만큼 몸을 사릴 생각은 없다. "주변에서도 수술 이력이 있어 걱정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더 물러날 곳이 없다. 관리도 중요하겠지만 이제는 한 번 더 끊어지더라도 후회없이 1~20개라도 1군에서 던지고 유니폼을 벗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운동하고 있다"며 오장훈은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결혼을 한 뒤 3년간 아내를 많이 고생시켰다"는 오장훈은 "그래도 이번 결정을 계기로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개인적인 바람까지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방망이를 들다 10년 만에 다시 공을 잡아 마음이 새롭다. 이 설렘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후회없이 던질 것이다. 처음 투수 훈련을 받던 날이 기억난다. 그 기분을 계속 간직하면서 운동하려고 한다"는 말로 오장훈은 즐겁게 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금은 목표가 소박하다. 오장훈은 "예전에는 홈런을 많이 치고 4번타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목표보다는 매일 도전하는 마음으로 언제든 피하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말처럼 1군 마운드에서 누구도 피하지 않고 강한 공을 뿌릴 날이 온다면 아마도 바로 그날이 오장훈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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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제공. OSEN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