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는 절대적이었다. "LG의 차세대 4번 타자가 될 것"이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매번 벽을 넘는 데 실패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정의윤(29, SK)이 야구 인생의 '제 2막'을 연다. SK는 정의윤이 환경을 바꾼 뒤 맹활약한 동갑내기 박병호(29, 넥센)의 사례를 그대로 밟길 기대하고 있다.
SK는 24일 LG와의 3대3 트레이드를 공식 발표했다. 1군 선수로 활약했던 임훈 진해수 여건욱을 내주고 LG로부터 신재웅 정의윤 신동훈을 받았다. 아직 손익 계산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양 팀 모두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는 트레이드다. 5강 진입을 위해 총력전을 예고하고 있는 SK는 우타 중장거리 요원(정의윤)과 왼손 불펜 요원(신재웅)을 영입한 것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부족했던 왼손 불펜진에 도움이 될 즉시 전력감인 신재웅,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고 영입한 신동훈에게도 나름대로의 기대치는 확고하다. 하지만 역시 SK가 이번 트레이드의 핵심으로 보는 선수는 단연 정의윤이다. SK는 시즌 초반부터 우타 대타 요원의 부재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최정 이재원 브라운 등 주전 선수들을 빼면 장타를 칠 수 있는 선수도 부족했다. 이에 시즌 초부터 정의윤을 눈독에 뒀다. 이번 트레이드도 SK의 '정의윤 문의'에서 시작해 발전했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5년 신인지명회의에서 LG의 2차 1라운드(전체 3순위) 지명을 받은 정의윤은 만년 유망주 꼬리표가 붙어 있다. 좋은 체격조건과 힘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가능성을 폭발시키지 못했다. 지금껏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린 시즌이 한 번도 없다. 올해는 주전 경쟁에서 밀린 양상이 뚜렷했다. 올해 32경기에서 타율 2할5푼8리, 7타점에 그쳤다. 퓨처스리그에서도 20경기에서 타율 2할9푼1리, 1홈런, 7타점이 전부였다.
그러나 SK는 정의윤의 잠재력에 눈길을 줬다. 현재 팀 상황도 그렇지만, 달라진 환경이라면 정의윤의 가능성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는 트레이드다. 오랜 기간 LG에서 확고한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한 정의윤이었다. 하지만 새 팀에서 의욕을 찾아 다시 시작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 심리 상태는 때로는 꽤 많은 것을 바꾼다. SK는 아직 만 30세가 안 된 정의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채 이번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여기에 정의윤의 힘이 SK에서는 통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엿보인다. LG가 홈으로 사용하는 잠실구장은 장거리 타자들의 무덤이다. 웬만한 타구는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잠실보다 좌·우·중앙이 모두 5m씩 짧고 펜스도 높지 않은 인천SK행복드림구장은 타자친화적이다. 실제 잠실에서 홈런을 잘 치지 못했던 LG 타자들이 인천에 넘어와 홈런 맛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
SK가 FA로 조인성(현 한화)을 영입했던 것은 포수 포지션 안정화도 있지만 조인성의 장타력이 인천에서 폭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안치용(현 KBSN 해설위원)을 트레이드로 영입할 당시에도 정의윤과 비슷한 기대가 깔려 있었다. SK는 정의윤의 힘이 두 선수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최정 이재원 김도현과 함께 팀 내 우타 중·장거리 라인을 구축하려는 포석도 엿보인다.
프런트 뿐만 아니라 현장도 들썩거린다. 김용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정의윤 영입에 대한 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장이 원한 자원을 얻어줬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비록 그라운드 사정으로 경기가 열리지는 못했지만 정의윤은 24일 목동 넥센전에 선발 6번 타자로 출전할 예정이었다. 정의윤에 벤치의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의윤이 LG 소속 당시 이상의 활약을 한다면 체력 소모가 심한 이재원의 휴식 시간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외야 라인업을 짤 때 경우의 수도 다양해진다.
어쩌면 박병호의 가능성이 터진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박병호 또한 LG에서 만년 유망주에 머물던 선수였다. 좀처럼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넥센으로의 트레이드가 선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고 상대적으로 타자친화적인 목동구장에서 대포를 뻥뻥 터뜨리며 늪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이제는 리그 최고의 홈런타자다. SK도 정의윤이 그런 과정을 밟길 기대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트레이드는 SK 역사상 최고의 성공작으로 남을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