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물건이었다. 데뷔전을 완투승으로 장식한 에스밀 로저스(30)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한화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로저스는 지난 6일 대전 LG전을 통해 KBO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지난 2일 입국 후 5일만의 초고속 데뷔였지만 로저스는 압도적인 투구로 첫 경기부터 완투승을 따냈다. 9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1실점. 총 116개의 공 중에서 스트라이크 82개, 볼 34개로 스트라이크 비율이 70.7%에 달했다. KBO리그 사상 첫 외국인 투수 데뷔전 완투승의 역사를 썼다.
▲ 포수 조인성, "직구+변화구 마음먹은 대로"

로저스와 첫 호흡을 맞춘 포수는 베테랑 조인성. 경험이 풍부한 그는 1회 시작부터 강한 느낌을 받았다. 조인성은 "1회 마운드로 올라갈 때부터 로저스의 눈빛이 달라지더라"고 증언했다. 오후 4시 출근할 때부터 경기 전까지 로저스는 미소를 지으며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자칫 긴장감이 풀려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작 마운드에 올라가자마자 확 달라졌다.
조인성은 "초반에는 직구 위주로 가고, 후반에는 변화구를 많이 썼다. 직구든 변화구든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던진다. 제구가 된다는 것이다. 변화구를 쉽게 쉽게 던지고, 강약조절까지 할 줄 알더라"고 말했다. 이날 로저스는 최고 156km 직구(42개) 컷패스트볼(5개) 외에도 최고 144km 슬라이더(29개) 커브(28개) 체인지업(12개) 등 변화구 비율이 더 높았다. 강속구 투수인데 변화구가 많으니 타이밍 맞추기가 어려웠다.
로저스의 강점은 운영능력에서도 돋보인다. 조인성은 "마운드에서 여유가 있다. 팀을 많이 생각해주는 것이 고맙다. 그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날 로저스는 조인성에게 공을 넘겨받자마자 지체 없이 투구하는 빠른 템포로 공을 던졌고, 호수비한 선수들에게 포옹으로 반겨줄 정도로 고마움도 아끼지 않았다. 경기 후에도 로저스는 "처음이라 포수 조인성에게 리드를 믿고 맡겼다. 조인성이 잘 이끌어줬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 이영재 심판, "갈베스 떠올라, 아직 100% 아냐"
조금 더 객관적인 위치에서 볼 수 있는 구심은 로저스의 투구를 어떻게 봤을까. 올해로 20년차가 된 베테랑 이영재 심판위원이 이날 경기 구심으로 로저스의 투구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이영재 심판위원이 느낀 로저스의 최대 강점은 '제구력'이었다. 이 위원은 "구속도 구속이지만 제구가 다른 외국인 투수들보다 좋았다. 힘 빼고 던지며 완급조절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이어 2001년 삼성에서 특급 활약을 한 발비노 갈베스와 비교될 만하다고 설명했다. 2001년 5월 대체 외국인 투수로 들어온 갈베스는 15경기 10승4패 평균자책점 2.47로 리드를 호령했다. 완봉승 2번 포함 완투만 5번 있었다. 이 위원은 "로저스도 예전 갈베스처럼 공이 묵직하게 들어온다. 공의 회전이 좋다기보다 공 자체가 마치 돌덩어리 같다. 여기에 예리하게 꺾이는 슬라이더와 떨어지는 체인지업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더욱 놀라운 건 이영재 위원이 느끼기에 로저스는 이날 100% 투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아직 100%로 던지는 것 같지 않았다. 1회에만 100%였고, 경기 전체로 볼 때 10개 미만으로 보인다. 한국 타자들이 처음이니 어떤지 느껴 보는 듯했다"며 "로저스가 100%로 던지는 것을 한 번 보고 싶다. 앞으로도 상당히 위력적일 듯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로저스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형과 이야기하며 완투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하게 돼 기쁘다"며 웃은 뒤 "앞으로도 길게 던지면 좋겠지만 매번 경기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도 8회 교체 타이밍이 있었는데 끝까지 던졌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고 말했다. 아직 100% 힘을 보여주지 않은 로저스, 그의 KBO 지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waw@osen.co.kr

대전=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