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신인왕의 명맥이 끊긴 시대다. 그만큼 1군과 갓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특히 야수는 더 그렇다. 첫해는 경기조차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측면에서 SK가 차세대 ‘핫코너 주인’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김웅빈(19)의 최근 페이스는 예사롭지 않은 측면이 있다. 퓨처스리그(2군) 경기에 나설 기회를 잡으며 쑥쑥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웅빈은 SK 퓨처스팀(2군) 선수 중에서도 막내다. 올해 프로에 입문한 새내기 내야수다. 2015년 신인지명회의에서 SK의 2차 3라운드(전체 27순위) 지명을 받았다. 투수를 먼저 선점하려는 최근 신인지명회의의 특성상 비교적 높은 순위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SK는 가능성을 봤다. 전천후 내야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공격과 수비, 그리고 주루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로 기대를 걸고 있다.
야구는 늦게 시작했다. 또래 선수들이 초등학교부터 방망이나 글러브를 잡은 것에 비해 김웅빈은 중학교 때 야구와 처음 만났다. 지역(경상북도 경주)에는 고교팀이 마땅치 않아 근처의 울산(울산공고)에서 야구를 이어간 경력도 가지고 있다. 김웅빈은 아직은 프로 생활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다. 김웅빈은 흔히 말하는 고3병이 있었다. 지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때 타격이 좀처럼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SK는 잠재력을 믿고 김웅빈을 지명했다. 그리고 꾸준한 성장세는 SK의 그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SK의 신인 야수 중 퓨처스리그에 출전하고 있는 선수는 김웅빈 정도밖에 없다. 루키팀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가다듬은 김웅빈은 최근 조금씩 경기에 나가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꽤 오랜 기간 먼발치서 그라운드를 바라봤던 까닭일까. 김웅빈은 “지금은 모든 순간이 다 즐겁다. 경기에 뛰는 맛에 힘든 줄을 모르겠다. 이제는 야구가 재밌다”라고 웃는다. 지난 7월 9일 소프트뱅크 3군과의 교류전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수 자신에게는 야구의 맛을 다시 알아가는 귀중한 안타이기도 했다.
고교 때는 정상급 내야수였지만 프로에서는 엄연한 루키. 갑작스레 달라진 환경에 낙담할 법도 하지만 김웅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김웅빈은 “배우는 것이 참 재밌다. 고등학교 때는 알지 못했던 것을 프로에 와서 배우고 있다”라면서 “기술적인 부분도 가다듬었지만 루키팀에서는 웨이트트레이닝을 비롯해 몸을 불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지난 6개월 정도의 나날을 떠올렸다. 확실한 체격을 갖춰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만큼 나름대로 소중한 사전 작업의 시간이었다.
SK 퓨처스팀은 신인 야수 중 가장 도드라진 성장세를 보인 김웅빈에게 앞으로 꾸준히 출전 시간을 줄 셈이다. 차세대 내야수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김웅빈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로 유격수를 봤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리를 3루로 옮겼다. ‘제2의 최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웅빈은 “코치님들이 ‘체질이 3루수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더라. 고등학교 때는 3루보다는 유격수를 많이 봤지만 서서히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SK의 내야에서 3루는 좀처럼 재목이 성장하지 않았던 자리다. 이 자리에 과감히 김웅빈을 기용한다는 자체가 이미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루는 공격도 중요한 포지션이다. 강타자들의 자리다. 김웅빈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타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웅빈은 “사실 여기서 못 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어찌보면 신인의 특권이다. 못 쳐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수비를 못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김웅빈은 “수비는 자신이 있었는데 프로에 와서 처음에는 송구 정확성이 떨어졌다. 스트레스르 많이 받았다”라며 은근한 승부욕을 드러냈다. 자신이 부족한 점을 깨닫는 것은 성장의 가장 첫 머리에 있는 일이다.
이에 김웅빈은 수비에서 확실히 인정을 받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프로에 들어와 첫 목표가 생긴 셈이다. 김웅빈은 “일단 수비가 되어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수비가 재밌다”라고 말했다. 강화 숙소 생활이 지루할 법도 하고,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도 보고 싶은 나이지만 그런 목표 의식 속에 힘든 생활을 버텨내고 있다.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보다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 역시 또래 선수들과는 다른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 나온다.
그 다음 목표도 이미 만들었다. 거창하게 1군에 가겠다는, 몇 단계를 점프한 목표는 아니다. 얼마 전 부상 때문에 2군에 내려온 최정의 플레이를 보며 감탄했다는 김웅빈은 “기본기를 착실하게 가다듬고 싶다”라고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재촉하는 질문에 한 가지 목표를 더 이야기했다. 김웅빈은 “올해 마무리캠프에도 한 번 가보고 싶고, 내년에는 2군 전지훈련이 아닌 1군 플로리다 캠프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가는 것이 목표”라고 눈빛을 반짝였다. 거창한 꿈이 아닌, 한 단계, 한 단계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최정도 시작할 때는 다 그랬다. 그에 비하면 김웅빈의 발걸음도 결코 무겁지는 않아 보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