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은 팀에서 가장 강해야 할 타순 중 하나다. 그런데 SK는 좀처럼 이 타순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유도 여러 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SK의 구세주가 뜰 조짐이 보인다. 바로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된 정의윤(29)이다. 4번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정의윤의 특성이 오히려 SK가 필요로 했던 부분과 일치하는 모습이다.
지난 7월 24일 LG와의 3대3트레이드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은 정의윤은 이적 후 무난한 활약상을 이어가고 있다. 아주 인상적인 장타쇼가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정의윤은 이적 후 11경기에서 타율 3할2푼3리, 출루율 4할, 장타율 4할1푼9리를 기록하고 있다. 1개의 홈런을 쳤고 8타점을 기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타점이다. 정의윤은 같은 기간 SK 팀 내 타자 중 최정(11타점)에 이어 가장 많은 타점을 수확했다. 타율이나 장타율이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더라도 필요할 때 착실하게 득점타를 내줬다는 의미다. 그리고 SK의 4번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정의윤은 이적 후 4번 타순에서 24타석을 소화, 나머지 타순(5·6·7)에서 소화한 타석의 합계보다 많이 모습을 드러냈다.

4번 타순에서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24타석에서 타율 3할, 1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사사구 4개를 고르는 동안 삼진은 2개 뿐이었다. 타 팀의 간판 4번에 비하면 약한 성적일 수도 있겠지만 SK에서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는 게 재밌다. 그간 SK의 간판 타자들은 4번에만 가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 SK의 4번 타순에 들어섰던 선수는 브라운(302타석), 이재원(50타석), 박정권(15타석), 최정(14타석)이다. 그런데 죄다 힘을 못 썼다. 브라운은 4번 타순에서 타율이 2할5푼4리에 그쳤다. 출루율은 3할7푼7리로 비교적 높은 편이었지만 병살타를 8개나 기록하는 등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성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득점권에서 너무 약하다는 단점이 꾸준히 지적됐다. 타점을 쓸어담아야 하는 4번에 어울리는 성향은 아니었다.
다른 타순에서는 3할 이상을 친 이재원은 4번에서 2할2푼2리에 그쳤다. 유독 4번에만 가면 힘을 못썼다. 리그 최고의 3번 타자인 최정도 4번 타순에서 2할3푼1리에 머물렀다. 두 선수는 3할 이상을 칠 수 있는 타자들이다. 유독 4번의 부담감에서 허덕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타격 슬럼프에 시달렸던 박정권의 4번 타순 타율은 1할6푼7리였다.
심리적인 요소였다. 브라운은 득점권에서 안타가 나오지 않자 심리적으로 쫓겼다. 최정은 데뷔 이후 꾸준히 3번만 치다 보니 4번이 낯설다. 스스로도 4번 타순에 대한 다소간 부담이 있다. 이재원은 올 시즌 포수 마스크를 쓰는 빈도가 늘어나다보니 공격에 전념하기 어렵다. 4번의 부담감이 역시 크게 다가오고 최정의 뒤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도 있다. 가뜩이나 안 맞는 박정권의 4번 배치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의윤은 이런 부담감에서 자유롭다. 4번의 부담감이야 모든 선수들이 가지고 있겠지만 정의윤은 트레이드 이후 의욕적으로 야구를 하는 단계다. 경기 출전 기회에 즐거워하고 그 기회를 살리겠다는 각오로 뭉쳐있다. 다른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4번 공포증’도 없다. 지금은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한 상황이다. 김용희 감독도 “참 의욕적으로 야구를 하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SK는 트레이드 이후 정의윤을 4번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통계는 이런 선택이 어느 정도 옳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현재 SK 타선은 서서히 폭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2번 타자’ 박정권이 대박을 향해 가고 있고 최정의 컨디션도 좋다. 이재원의 페이스가 다소 처지기는 했지만 브라운의 오름세는 반가운 일이다. 여기서 ‘4번 정의윤’까지 터진다면 더 힘을 받을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