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가 나온 날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투수와 포수, 벤치는 물론 타자들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인 룰이다. 최근 불이 붙고 있는 SK 타선이 ‘매 맞은 에이스’ 김광현의 아픔을 갚아주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가을 DNA가 있다고 믿는 SK 타선에게 이날은 입추이기도 했다.
SK는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3-7로 뒤진 7회 무려 7점을 내는 응집력을 발휘하며 역전에 성공한 끝에 11-8로 이기고 5할 승률 붕괴 직전에서 벗어났다. 5회까지 3-7로 뒤지며 끌려가던 SK였지만 타선이 확실하게 폭발하며 최근 호조를 이어갔다.
사실 경기 초반 분위기는 어두웠다. SK는 6일과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상대의 맹공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주저 앉았다. 선발이 조기에 무너지는 통에 속절없이 경기를 내줘야 했다. 말 그대로 “벌을 서는 경기”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에 SK는 8일 ‘에이스’ 김광현을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상대 선발 정대현이 SK에 강했다고 해도 최근 절정의 감을 보여주고 있는 김광현이라면 선발 매치업은 우위였다.

연패 탈출의 희망을 품고 시작한 경기인 만큼 초반 실점은 더 무겁게 다가왔다. 김광현이 초반부터 흔들렸다. 5회까지 매 이닝 선두타자를 내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1회에는 마르테와 김상현에게 백투백 홈런을 얻어 맞았고 2회부터 5회까지는 꼬박꼬박 1실점씩을 했다. 추가 실점을 면한 것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이날 김광현의 구위와 제구는 떨어져 있었다.
SK는 2회 3점을 만회하기는 했으나 4회와 5회 무사 1,2루 기회를 모두 놓치며 분위기가 가라 앉아 있는 상태였다. 타선도 뭔가 안 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좋은 타구가 상대 호수비에 잡히는 경우가 수 차례였다. 그러나 결국 6회 대폭발하며 에이스의 패전요건을 단번에 지워줬다.
집중력의 승리였다. 선두타자로 나선 박정권이 정대현을 상대로 중월 솔로포를 날리며 추격의 포문을 열었다. SK 타선이 기운을 내는 계기가 됐다. 이어 김강민의 좌전안타, 정의윤의 몸에 맞는 공이 나왔고 박계현이 침착하게 희생번트를 대 1사 2,3루를 만들었다. 이어 이명기도 고영표의 공을 침착하게 고른 끝에 결국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해 1사 만루가 됐다.
해결사는 김성현이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최근 10경기에서 타율 3할7푼1리, 6타점을 기록하며 방망이가 달아올라 있는 상황이었다. 타순도 9번에서 2번으로 전진배치됐다. 이미 이날도 2안타를 기록 중이었던 김성현은 고영표를 상대로 좌중간을 가르는 3타점 싹쓸이 2루타를 치며 단번에 동점을 만들었다.
SK의 집중력은 계속 이어졌다. 이재원이 바뀐 투수 윤근영을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쳐내 역전에 성공했다. 대미는 브라운이 장식했다. 윤근영의 포크볼을 제대로 받아쳐 우월 2점 홈런을 쳐내며 팀에 3점의 리드를 안겼다. 분위기상 대세가 SK로 완전히 기우는 이닝이었다.
김광현은 올 시즌 이미 10승을 거두며 에이스로서의 몫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타선의 덕도 보고 있다. 김광현이 올 시즌 5실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는 이날 경기까지 5차례였다. 그런데 그 5번의 경기에서 타선은 모두 김광현의 패전요건을 벗겨줬다.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타선의 허물을 김광현이 감춰주는 날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김광현을 타선이 도와주는 날도 있는 것이다. 에이스의 아픔은 그대로 갚아주는 타선이 이날 SK 팬들의 속을 시원하게 했다. /skullboy@osen.co.kr
인천=김경섭 기자 greenfiel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