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여호가 부상 악령을 떨쳐내고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 축구대표팀(FIFA랭킹 17위)은 지난 8일(한국시간) 오후 중국 우한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서 열린 북한과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최종전서 0-2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2승 1패를 기록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악조건을 이겨냈다. 강호들과 참 잘 싸웠다. 일본(4위), 북한(8위), 중국(14위)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난적이다. 모두 한국 보다 FIFA 랭킹도 높다. 일본은 올 여름 캐나다 월드컵 준우승국이고, 중국은 8강에 올랐다. 북한도 수 십년간 여자 축구의 강호로 군림해왔다.

설상가상 윤덕여호는 이번 대회 최정예 전력을 꾸리지 못했다. 지소연(첼시 레이디스), 박은선(이천대교) 등이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데다 핵심 요원들이 월드컵에 이은 WK리그의 혹독한 일정 탓에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유영아(현대제철)와 김혜영(이천대교), 윤사랑(화천 KSPO)이 대회를 앞두고 부상 낙마한 윤덕여호는 '캡틴' 조소현을 비롯해 전가을(이상 현대제철), 권하늘(부산상무) 등 주축 자원들이 대회 시작부터 부상으로 신음했다. 이들 셋은 지난 1일 중국과의 대회 1차전서 나란히 벤치를 지켰다. 온전치 않은 몸 상태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심서연(이천대교)의 도중 낙마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중국전서 조소현을 대신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격했지만 후반 불의의 부상을 입었다. 검진 결과 오른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결과를 받아들며 대회 도중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그럼에도 윤덕여호는 굴하지 않았다. 정설빈(현대제철)의 결승골을 앞세워 개최국 중국을 1-0으로 제압했다. 일본과의 2차전은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선제골을 내줬지만 조소현과 전가을의 릴레이 골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후반 추가시간 터진 전가을의 그림 같은 프리킥 역전골은 한국 여자 축구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었다.
역대 전적 1승 1무 13패, 지난 2005년 승리 이후 8연패의 아픔을 안겼던 '천적' 북한과의 경기는 가능성과 아쉬움을 동시에 발견한 무대였다. 결정력과 수비 집중력 부족에 발목이 잡히며 0-2로 패했지만 내용은 훗날을 기대케 했다.
월드컵 경험이 큰 힘이 됐다. 북한전을 통해 한국 여자 축구선수로는 처음으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에 가입한 권하늘은 "월드컵이나 동아시안컵 등 큰 대회를 치르며 자신감이 더 생겼다"며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월드컵을 경험하지 않고 동아시안컵에 나왔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장' 조소현은 "월드컵 경험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북한전도 당황하지 않고 우리의 플레이를 하려고 했다"며 "경기력이 달라졌다. 과거처럼 미리 겁을 먹거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이런 점이 새로운 선수들이 합류해 호흡을 맞추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거들었다. 전가을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월드컵을 다녀온 모든 선수들이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장밋빛 미래를 엿봤기에 더 값진 준우승이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해 대회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이민아(현대제철)를 비롯해 이금민(서울시청), 서현숙(이천대교), 장슬기(고베 아이낙) 등 젊은 피들의 재발견을 봤다. 대표팀의 주축인 1988년생들과 선의의 경쟁 구도도 형성됐다.
윤덕여 감독도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이자 한국 여자 축구 성장의 밑거름이 된 대회였다"며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dolyng@osen.co.kr
우한(중국)=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