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만 본 SK, 돌아선 오늘의 팬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8.09 21: 15

한 때 리그 평균자책점 순위에서 1위를 다투던 SK 마운드가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4경기에서 무려 합계 49실점을 하며 적색경보가 진하게 들어왔다. 여기서 적극적인 개입으로 마운드 붕괴를 막았어야 했을 벤치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어떤 메시지도 주지 못한 채 홈팬들 앞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선보였다. 기대감을 가지고 입장한 홈팬들은 의지가 꺾인 선수단을 바라보며 2시간 넘게 애만 태워야 했다.
SK는 9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선발 채병룡의 난조에 계투 작전까지 실패로 돌아가며 4-10의 참패를 당했다. 타선은 0-4로 뒤진 2회 박정권 정상호의 투런포를 묶어 동점을 만드는 저력을 과시했으나 마운드가 추가 대량 실점을 하는 바람에 추격 의지가 완전히 꺾인 채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다. 이날 패한 SK는 어렵게 탈환했던 5위 자리를 한화에 내주고 6위로 내려앉았다.
주초 첫 2연전이었던 한화전 2연승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던 SK였다. 그러나 6일과 7일 열린 포항 삼성전에서 상대의 막강한 공격력에 연패를 당하더니 8일과 9일에도 마운드가 무너지며 힘든 경기를 했다. 8일에도 타선이 6회 7점을 내는 응집력을 발휘한 덕에 간신히 역전승했다. 6회 어느 한 장면에서라도 꼬였다면 패배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사실 전 3경기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선발들이 무너졌다. 6일 선발이었던 박종훈은 3이닝 6실점(5자책점)을 기록했다. 7일 선발 크리스 세든은 한술을 더 떴다. 2이닝 7실점을 기록, 불펜 투수들이 나머지 6이닝을 소화해야 했다. 2경기 연속 선발 조기강판으로 불펜 소모가 심했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필승조 투수를 최대한 아끼며 kt와의 주말 2연전에 대비하는 수순은 밟았다는 것이었다. 선택과 집중이었다.
속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발휘한 인내심은 8일 경기에서 불펜 필승조 호투로 이어지며 소기의 성과는 거뒀다. 선발 김광현이 5이닝 7실점을 기록했지만 불펜 투수들이 나머지 이닝에서 kt의 추격을 저지한 것이었다. 그 당시의 인내심은 9일 경기에서도 승부수가 될 법했다. 필승조 투수들은 3연투가 없어 모두가 대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10일이 휴식일임을 생각하면 불펜 총력전도 가능했다.
불펜 총력전은 선택이 아닌 예고된 수순이었다. 충분히 대비를 했다. SK는 이날 어깨가 다소 뭉쳐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윤희상을 다음 주 선발로 돌리고 6일 경기에서 1이닝을 던졌던 채병룡을 선발로 내세웠다. 어차피 많은 이닝을 던지기는 어려웠다. 김용희 SK 감독도 경기 전 “4~5이닝, 투구수는 70개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펜 투수들은 순번대로 경기 시작부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순차적 스탠바이였다. 하지만 초반 교체 타이밍이 모두 엇나갔다.
투수 교체는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날은 총력전의 여건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움직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경기였다. 6~7일 삼성전과 이날 경기 상황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SK는 채병룡이 1회 2실점을 하고 2회 2점의 추가점을 내주는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2회 4점을 쫓아갔고 동점이 된 상황에서 3회 시작부터 문광은을 두 번째 투수로 투입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
그러나 문광은이 3회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안타 하나와 볼넷 두 개를 허용할 때, 장성우에게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를 허용했을 때, 박경수에게 적시 2루타를 맞았을 때, 자신의 올 시즌 경기당 평균 투구수를 넘겼을 때 등 문광은이 이상 조짐을 보일 때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3회에만 5점을 내준 뒤에야 전유수를 올려 부랴부랴 진화에 들어갔다. 승부수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여럿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써먹지 못한 셈이다. 이날 패배가 두 배의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전유수가 등장해 위기를 깔끔하게 정리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차피 투입시킬 전유수였다면 좀 더 빠른 교체 타이밍을 잡아갈 수도 있었다. 이닝 중간의 투수 교체는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도 부담이 되지만 대기 타석에 서 있는 상대 타자에게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위기 상황에서 벤치가 분위기를 바꿔볼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SK는 이날 그 카드를 아낀 것이 참패로 이어졌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투수가 없지는 않았다는 건 이후 경기 운영에서 증명이 됐다. 전유수는 3⅓이닝 동안 52개의 공을 던졌고 7회 박정배(1⅓이닝 31구)라는 필승카드에 가까운 선수들이 줄줄이 마운드에 올랐다. 경기를 뒤집었거나 근소하게 따라가는 흐름이었다면 신재웅 윤길현 정우람이라는 필승카드들도 모두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타선이 따라 잡지 못하자 결국 8회 백기를 들었다.
따라 잡은 상황에서 상대가 다시 멀리 도망가는 것을 지켜보며 힘이 빠진 타선을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 상대 선발은 6이닝 이상 소화능력을 가진 외국인 타선 저마노였다. 아무리 타선이 좋은 상황이라고 하지만 멀찌감치 뒤진 상황에서도 금세 쫓아갈 수 있다는 계산을 하기는 어려웠다. 실제 이는 2회 이후 무득점 침묵에 빠진 결과에서 드러났다. 선수들은 물론, 벤치의 계산에서도 완패했다.
SK는 고효준과 세든의 2군행, 채병룡의 선발 합류로 현재 3이닝을 막을 만한 롱릴리프 자원이 없다. 이런 사정도 이해는 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점점 시즌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잔여경기가 가장 많은 SK도 남은 경기는 46경기뿐이다. 7월까지는 선수들의 체력을 고려해 이길 경기와 질 경기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SK 마운드의 전략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논란에도 "좀 더 지켜보자"라는 말이 통용된 이유였다. 한화에 비해 힘이 있다고 평가받는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8월이다. "8월이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이야기였지만 아직 승부처에서의 과감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박정배가 돌아왔고 박희수까지 돌아온다고 해도 기용하는 것은 벤치의 몫이다. 이런 시스템의 최종 성적표는 시즌이 끝나고 판단해야겠지만, 경쟁자는 오늘만 보고 죽자 살자 뛰는 한화다. SK는 이날도 필승조 투수들을 아꼈다. 그러나 이 안배는 승리로 이어질 때 의미가 있다. SK의 시스템은, 다음 주부터는 달라질 수 있을까.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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