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배영수(34)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믿음이었다. 믿어주면 반드시 보답하는 투수, 그것이 바로 배영수의 진가다.
배영수는 지난 9일 대전 롯데전에서 6이닝 9피안타 2볼넷 1실점 퀄리티 스타트로 막고 한화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5월27일 대전 KIA전 시즌 3승 이후 74일 만에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안타를 9개 맞았지만 고비 때마다 3개의 병살타를 유도하며 실점을 최소화하는 위기관리능력을 자랑했다.
하이라이트는 6회초였다. 1사 후 짐 아두치에게 좌중간 안타를 맞은 뒤 최준석과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줬다. 그 때 니시모토 다카시 한화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이전이었다면 교체 타이밍.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니시모토 코치는 배영수의 등을 두드리고서 내려갔다. 김성근 감독이 배영수를 믿고 밀어붙인 것이다.

배영수는 강민호에게 볼넷을 주며 만루 위기를 자초했지만 벤치는 꿈쩍하지 않았다. 배영수는 박종윤에게 슬라이더를 던져 2루수 앞 땅볼을 유도, 4-6-3 병살타로 연결하며 실점 없이 위기를 넘겼다. 그 순간 배영수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한화 이적 후 가장 큰 액션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성근 감독의 믿음에 배영수가 보답을 했다.
사실 올 시즌 배영수는 믿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배영수뿐만 아니라 한화 선발투수들 대부분이 다른 팀보다 교체 타이밍이 한 박자 이상 빠르다. 배영수는 올해 3실점 이하 투수가 6회를 못 채우고 강판되는 퀵후크가 8번 있었다. 5회 이전 내려간 것은 무려 11번. 김성근 감독 스타일상 흔들리는 선발투수는 길게 끌고 가지 않는다. 배영수에게 낯설었다.
2010년대 삼성에서 배영수는 길게 던질수록 제 몫을 하는 전형적인 선발투수였다. 2011~2014년 4년간 5회 이전 강판은 6-4-3-4차례에 불과했으며 퀵후크는 5-3-2-3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점수를 조금 주더라도 선발투수로서 이닝을 책임지는 능력은 확실했다. 한화 이적 후에는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고생 했지만, 이날 믿음에 보답한 투구로 반전계기를 마련했다.
한화 관계자들은 "배영수가 힘든 상황일 텐데 티내지 않고 씩씩하게 한다. 급이 있는 투수일수록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열심히 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불펜에서 혼자 알아서 투구연습을 할 정도로 보이지 않은 곳에서 노력하고 있다. 좋은 결과로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이다"며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랐다.
롯데전 모처럼 만의 승리에도 배영수는 만족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수비가 도와준 승리다. 야수들은 투수들보다 훈련량이 많아 잘 쉬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도 많을 텐데 투수 고참으로서 도움이 못 돼 미안하다"고 말했다. 팀과 동료들에 미안함을 갖고 있는 배영수, 그에게는 이날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 배영수는 믿어주는 만큼 꼭 보답하는 투수이기 때문이다. /waw@osen.co.kr

대전=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