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선수인데 전반기와 후반기가 완전히 다르다. 기록 차이야 조금은 날 수 있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기는 쉽지 않다. ‘미스터리’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SK 중심타자인 박정권(34)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반전이 쉽게, 혹은 거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선수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 주위의 끊임없는 고민이 녹아 든 산물이다.
박정권은 올 시즌 KBO 리그 후반기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하나다. 후반기 15경기에서 타율 4할2푼, 5홈런, 12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출루율은 4할6푼3리, 장타율은 8할2푼, OPS(출루율+장타율)는 1.283에 이른다. OPS만 놓고 보면 박석민(삼성, 1.470), 에릭 테임즈(NC, 1.425)에 이어 리그 3위다.
완전히 변했다. 적어도 기록만 놓고 보면 그렇다. 63경기에서 기록한 홈런은 단 7개에 불과했다. 전반기 OPS는 0.762로 처졌다. 타고투저의 시대에서 이 정도 OPS로는 확고한 중심타자라고 볼 수 없다. 실제 박정권의 OPS는 전반기 규정타석을 채운 50명의 선수 중 42위였다. 호쾌한 장타, 그리고 해결사 본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박정권은 그 와중에 두 차례나 2군행을 경험했다.

기술적인 문제가 크지는 않았다. 프로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수의 폼이나 밸런스가 장기적으로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고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박정권은 가장 먼저 경기장에 나와 특타를 자청하고, 경기 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또 특타를 했다. 한 관계자는 “집에서도 스윙을 한다고 하더라”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데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에서도 답답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이겨내는 과정도 결국 평범한 곳에 답이 있었다. 진부할 수 있지만 선수는 노력을 계속했고 코칭스태프는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 그런 노력이 복합적인 작용을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조카뻘인 루키팀 선수들과 함께 강화도에서 땀을 흘렸던 박정권은 묵묵히 배트를 돌리며 때를 기다렸다. 하루 종일 치고, 또 쳤다. 사람을 상대로, 기계를 상대로, 그리고 가상의 적을 상대로 방망이를 돌리며 몸 상태를 계속 끌어올렸다. 그리고 벤치는 일견 파격적으로 보였던 라인업으로 박정권의 기분을 바꿔줬다. 2번 기용이었다.
박정권은 4번 혹은 5번에서 장타를 뿜어내는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 2007년 SK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후에는 중심타선에 위치하는 빈도가 높았다. 반면 2번은 보통 “작전수행능력이 필요하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자리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코칭스태프 및 참모들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어차피 안 맞고 있는 상황에서 5번에 두나 6번에 두나 임무와 부담감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예 박정권을 상위타순으로 올렸다. 당시 주축 타자들의 감이 저조해 2번감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고려됐다.
한 관계자는 “박정권은 장거리 타자의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 올 시즌을 유심히 살펴보면 컨택 위주의 타격을 하고 있었다. 2번에 둬 선수의 분위기를 바꿈은 물론 실질적인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꾸준히 가능성 타진은 있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 7월 말이었고 박정권은 거짓말처럼 폭발했다. 7월 31일 인천 LG전에서 실로 오래간만에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박정권은 그 후 15경기에서 타율 4할2푼, 5홈런, 12타점으로 폭발했다. 순도 높은 홈런포는 덤이었다.
한 차례 기분을 바꾼 박정권은 이제 타순에 관계없이 좋은 타구를 날려 보내고 있다. 8일 인천 kt전에서는 추격의 동력을 제공하는 솔로홈런을 쳐냈고 9일 인천 kt전에서도 역시 투런포를 쳐내며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두 경기에서는 6번으로 출전했고 최근 3경기에서는 모두 멀티히트다. 확실한 기분 전환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박정권은 중심타선에 좌타가 부족한 SK에서는 여전히 전략적 가치가 큰 선수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팀은 5위 싸움을 하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승부처다. 박정권이 감을 이어가며 팀의 포스트시즌행을 이끈다면 그 자체로 전반기 부진은 어느 정도 만회한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돌이킬 수 없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있는 선수도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후반기 박정권의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