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m 계주에 나가도 될 법한 선수들이 SK 1군 선수단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기존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생긴 우연한 모임이지만 SK 구단의 기대는 작지 않다. 이들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구단의 미래도 한층 밝아질 수 있다.
SK는 최근 주축 선수들의 부상에 또 다시 고민을 안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대수가 2군에 내려간 것에 이어, 나주환은 경기력 점검 차원에서 2군행을 통보받았다. 여기에 김연훈이 번트 상황에서 투구에 손가락을 맞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박진만은 허리가 좋지 않아 빠졌다. 급기야 10일에는 주장 조동화가 급성 복통으로 입원함에 따라 다시 1군 엔트리 한 자리가 비었다.
한창 힘을 모아 치고 올라가도 모자랄 판에, 이탈자가 자꾸 생기니 벤치도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빈자리를 젊은 선수들이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2일 나주환 대신 몸 상태를 정비한 박계현이 올라왔고 3일 김연훈의 빈자리는 유서준이 올라와 메웠다. 8일 박진만이 내려가자 최정민이 1군에 등록됐고 10일 조동화 대신 이진석이 올라와 1군 엔트리가 대폭 젊어졌다. 박계현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팬들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젊다는 것도 있지만, 팀을 대표하는 준족들이라는 것도 있다. 박계현은 이미 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 중 하나로 정평이 나 있다. 가벼운 몸놀림에 보폭까지 커 1루에서 2루까지 내딛는 스텝이 리그에서 가장 적은 선수 중 하나다. 올해 제한된 기회에서도 9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공·수·주 3박자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최정민은 스스로의 최고 무기를 ‘발’이라고 말할 정도다. 역시 팀 내에서는 정상급 주력을 갖췄다. 센스도 있다는 칭찬을 받는다.
여기에 2년차 유서준도 발이라면 만만치 않은 능력을 자랑한다. 올 시즌 퓨처스리그 63경기에서 무려 28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발걸음임을 증명했다. 이진석은 화룡점정이다. 올 시즌 퓨처스리그 45경기에서 무려 31번이나 베이스를 훔친 이진석은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 당시 30m, 50m, 100m 측정에서 박계현 김재현 이명기라는 선배들을 제치고 모두 1위를 기록했다. ‘한 주력’ 하는 박계현과 김재현조차 “엄청나게 빠르다. 이진석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당시 이진석의 100m 기록은 허벅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11초55였다.
물론 이 선수들을 1군에서 전폭적으로 중용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1군 경험이 있는 선수는 박계현 정도고 나머지는 이제 2~3경기를 뛰었거나 아예 출전 경험이 없는 선수다. 대부분 대주자와 대수비 임무로 경기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기 중·후반에는 언제든지 출전 기회가 올 수 있고 그런 제한된 기회를 잡아 코칭스태프에 강렬한 눈도장을 찍는 것이 바로 스타의 싹수다. 베테랑들의 연쇄 부상 속에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선수들의 성장세는 향후 SK의 전력 밑그림과도 직결된다. 한 때 리그를 선도하는 기동력을 자랑했던 SK는 올해 도루 개수가 9위까지 처지는 등 뛰는 야구로 재미를 못 보고 있다. ‘뛰는 야구’의 신봉자인 김용희 감독이지만 삼성이나 NC처럼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크다. 실제 올 시즌 SK의 최다 도루 성공 선수는 조동화로 16개, 그 다음이 이명기로 13개다. 20도루 선수는 한 명도 없고 두 자릿수 도루도 2명에 불과하다. 처참한 성적표다.
한 때 20도루 이상을 능히 해낼 수 있었던 김강민 박재상 나주환 등 베테랑들의 주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게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20-20의 단골손님이었던 최정도 부상 이후 과감한 베이스러닝이 줄어들었다. 현대 야구는 한 베이스를 둘러싼 야구다. 뛰는 야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에서 ‘뛸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는 SK의 사활을 쥐고 있다. 1군에 모인 광속 육상부들의 활약에 좀 더 주목해야 할 이유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