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소리를 듣고 던졌다".
한화 내야수 정근우(33)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2루수다.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춘 그는 특히 수비에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데 남들은 거의 잡을 수 없는 타구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캐치하는데 능하다. 하지만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빛나는 수비수가 바로 정근우다.
지난 9일 대전 롯데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0-1로 뒤진 4회초 롯데는 1사 1루에서 박종윤이 우중간 깊숙하게 가르는 2루타를 터뜨렸다. 1루 주자 강민호가 2루를 지나 3루 그리고 홈까지 질주했다. 이 때 2루수 정근우가 외야까지 나가 우익수 정현석으로부터 공을 받자마자 홈으로 즉시 송구했다.

정근우는 주자의 위치도 확인하지 않은 채 공을 받은 직후 지체 없이 홈으로 던졌다. 외야 중간까지 커버해 홈까지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원 바운드로 정확하게 송구하며 강민호를 홈에서 잡아냈다. 추가 실점을 막는 결정적인 장면으로 한화의 2-1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한 순간이었다.
정근우는 당시 홈으로 고민하지 않고 던진 이유에 대해 "민호가 홈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관중들의 소리가 있지 않은가. 농담이 아니라 난 진짜로 중계 플레이 때 관중들의 소리를 듣고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당시 강민호가 3루를 지나 홈으로 들어올 때 관중들의 소리를 듣고 홈 승부를 택한 것이다.
그는 "주자가 홈으로 들어갈 때 관중 분들께서 '으아' 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때 홈으로 들어가는구나 하고 바로 던져버린다"며 "사실 그 상황에서 야수 콜은 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중 소리가 더 정확하다. 홈이나 원정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관중이 많으면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경기 상황이나 본능적인 판단뿐만 아니라 관중들의 소리까지 캐치해 플레이로 연결하는 것이다. 정근우는 "나 같은 경우에는 예전부터 이렇게 플레이했다. SK에 있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모든 선수는 아니라도 나처럼 이렇게 하는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찰나의 접전 상황에서도 관중 소리를 듣고 판단할 만큼 주의 깊고 대담한 선수는 정근우 말고 없을 것이다.
턱 부상 후유증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한 정근우는 초반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지만, 어느덧 타율을 3할6리까지 끌어올렸다. '올라올 선수는 올라온다'는 사실을 새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타격과 수비에서 모두 타고난 센스와 부단한 노력 그리고 경험이 더해져 '당대 최고 2루수' 정근우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waw@osen.co.kr

수원=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