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행의 비극, 강력한 억제가 해법이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8.13 13: 29

최진행(30, 한화)은 이글스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거포 유망주였다. 2010년 32개의 홈런을 몰아쳤고 그 후 올 시즌까지 네 번이나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렸다. 김태균과 함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영광을 재현할 적임자로 손꼽혔다. 그러나 최진행은 이제 ‘약물’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선수가 됐다.
12일 1군 무대에 복귀한 최진행은 진심을 담아 팬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경기 도중 두통 때문에 병원에 갔을 정도라고 하니, 그가 받았을 스트레스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한 순간의 실수, 혹은 성적을 대한 욕심이 낳은 대가는 이처럼 참혹했다. 아마 좋지 않은 여론에 당분간 그 두통은 계속 될 수도 있다. 물론 잘못을 저지른 만큼 스스로 평생 감수해야 할 상처다. 또한 선수와 한화는 물론, 리그 전체도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한 베테랑 선수는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비극적인 일이다”라고 했다.
이제는 지나간 일일 수도 있다. 최진행은 30경기라는 징계를 받았고 그 징계 기간을 모두 채웠다. 1군에서 뛰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진짜 논란은 이제부터다. 지금도 약물은 많은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다. 성적이 곧 돈인 프로 선수들에게 이런 약물은 피할 수 없는 달콤함이다. 남들보다 더 월등한 신체 능력 향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제2의 최진행을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강력한 억제에 나서야 한다.

징계 수위를 높이자는 의견도 있다. “약물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강력한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이야기이며 이 또한 좋은 억제책이다. 하지만 징계를 받는 선수가 또 나오길 바라는 팬들은 없다. 우선적으로 강력한 사전 억제책이 필요하다. “약물을 하면 무조건 걸린다, 그러면 큰 징계로 이어진다”라는 매끄러운 논리의 다리를 놔야 한다. 현재보다 도핑 테스트의 양과 질을 모두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현재 KBO(한국야구위원회)의 도핑 테스트는 표적 조사에 가깝다. 모든 선수를 다하지는 못하고 몇몇 선수들만 검사를 한다. 나름대로의 근거는 있다. 기량이 부쩍 향상된 선수, 몸이 급격하게 좋아진 선수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요새는 제보도 받는다. 외국인 선수는 다 포함이다. 이렇게 퓨처스리그 선수를 포함, 한 해 200명 정도의 선수가 테스트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조사로 모든 것을 잡아낼 수는 없다. 약물은 보통 3개월 정도면 체내에서 모두 빠진다. 타이밍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혹은 아예 검사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약물을 하고도 적발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어쨌든 무조건 검사를 받는다”라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 당장 전수조사를 하기는 어렵지만 대상의 폭을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소변 검사가 아닌, 혈액 검사로 그 단속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공론화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선수들이 ‘피를 뽑는다’라는 것에 그다지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 선수는 “우리 팀은 물론이고 다른 팀 선수와도 이야기를 해보니 혈액 검사를 해서라도 누명을 벗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더라. 막상 시행한다고 하면 거부할 선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리그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데 선수협이 반대할 명분도 없다. 물론 전수조사의 효용성 평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이나 일본도 하지는 않는다. 일각에서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인력 부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KBO 리그는 MLB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다. 그 쪽이 안 한다고 해서 우리도 가능성을 마냥 배제할 필요는 없다. 또한 최근 박태환 사건 및 프로스포츠에서의 약물 복용 사례의 적발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도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프로야구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문제다.
걸림돌은 비용이다. 최진행 사태가 불거질 당시 한 구단의 고위관계자는 “회의에서 혈액검사 및 전수조사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는 것 같다. 비용이 꽤 든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실제 10개 구단 1군의 모든 선수들이 혈액 검사를 하려면 비용이 문제다.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시료 샘플 가격이다. 보통 100개 단위로 판매한다. 3명이 검사하나 100명이 검사하나 비용은 같다. 1개 팀이 모두 검사를 하려면 그 샘플 가격만 2400만 원 정도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10개 팀이 모두 하려면 기타 비용까지 포함해 3억 원 이상이 든다.
다른 관계자는 “약물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보통 약물이 체내에 남아있는 시간은 3개월 정도다. 소변으로는 좀 더 빨리 빠진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MLB 쪽에서는 혈액 검사가 최선의 방법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수조사로 가야 한다”라면서 “비용이 문제라면 시즌에 두 번이라도 거의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야 한다. 3개월 정도의 시차를 생각하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커버는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혈액 검사에 대한 필요성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결국 10억 원 가까이 드는 예산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인데 이는 각 구단과 KBO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야구계의 평가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KBO의 마스터 플랜 속에 돈줄을 쥐고 있는 각 구단이 적극 호응헤야 한다. ‘약물의 시대’를 보는 메이저리그는 한동안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리그에 대한 불신은 이제 막 산업화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KBO 리그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또 다른 비극이 나오면 KBO 리그는 '약물 리그'의 오명을 뒤집어쓴다. 돈 10억 원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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